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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6

성북동을 걷다 서울에 걷기에 좋은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동대문에서 낙산을 거쳐 성북동에 이르는 길이나 복개된 성북천 일대의 성북동은 아내와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이다. 아내와 나는 마치 우리만 아는 비밀의 장소인양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과 지인, 친구들에게 권하고 함께 걸었다. 이용의 노래 덕에 뭔가 좋은 일이 생길 듯한 10월의 마지막 날. 코로나 와중에 비대면 온라인강좌를 들으며 알게된 영상 독서토론 모임인 "동네북" 회원 여덟 분과 마침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지난봄 서촌에 이어 "동네북"의 두 번째 당일기행이다. 좋아하는 곳이다보니 블로그에 지난 글이 꽤 여러 개 있다. 새삼 덧붙일 것이 더 없어 "동네북"이 걸은 순서를 따라 지난 글을 링크한다. (이번 기행에 가보지 않은 곳도 있지만 이 기회에 정리해 본.. 2023. 11. 3.
청계천 걷기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가 말했다. "가장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루에 여덟 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계속 밥을 먹을 수도 없으며, 또 여덟 시간씩 술을 마실 수도 없으며, 섹스를 할 수도 없지요. 여덟 시간씩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이지요." 내가 여덟 시간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책 읽기와 걷기다. 물론 이 둘도 여덟 시간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할 수는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기는커녕 즐겁다. 포크너가 말한 일의 범주에 드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어디에 속하건 백수인 나와 .. 2022. 6. 12.
<<태일이>>의 부활 내가 입대하여 막 부대 배치를 받은 졸병이었을 때 그는 말년 병장이었다. 서울대를 다니다가 입대를 했다는 이유로 부대원들의 선망을 받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선하고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나에겐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우연 때문인지 더욱 그랬다. 계급적으로 까마득한 거리가 있는 선임이었지만 그는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늘 동아리의 선배처럼 편안하게 말을 건네곤 했다. 한 가지, 그는 사격 훈련에선 완전 낙제생, 군대말로 '고문관'이었다. 과녁에 아예 한 방도 맞추질 못했다. 한 발도 안 맞추기는 스무 발을 다 맞추는 것보다 힘든 일인데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 나가는 사격장에서 그는 매번 체력 훈련을 받아야 했다. '총을 못 쏘면 총알이라도 나르는.. 2022. 4. 17.
발밤발밤24 - 대구 시내를 걷다2(끝) 약령시 한의학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옛 제일교회가 있다. 지금은 교회 역사관인 듯 했다. 1898년 미국 선교사가 경북 지역 최초로 세운 교회라고 한다. 안내문에는 현재의 모습을 갖춘 때가 1936년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도 거대한 규모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일대에 거의 견줄만한 건물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건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중학교 때인가 이웃 친구네 형의 책장에서 우연히 처음 이상화의 시를 접했을 때의 뭔가 가슴이 서늘해지던 기억.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나의 침실로」를 읽으며 '마돈나', '침실', '수밀도', '네 가슴' 등이 주는 묘한 상상에 친구와 킬킬거렸던 기억. 마돈나며 침실이란 생경한 단어와 함께. (침실의 뜻은 알았지만 안방, 건너.. 2017. 7. 13.
내가 읽은 쉬운 시 34 - 정희성의「진달래」 텔레비젼 드라마 「송곳」의 주인공이 말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고. 그 말은 뒤집어도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풍경이 변하지 않았다면 서있는 곳은 여전히 같은 것이라고. 45년이나 흐른 '전태일의 늦가을'에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시,「진달래」를 읽는 이유가 되겠다. 바스라질 듯 낡은 시집의 책장을 다시 조심스레 넘겨가며. 잘 탄다, 진아 불 가운데 서늘히 누워 너는 타고 너를 태운 불길이 진달래 핀다 너는 죽고 죽어서 마침내 살아 있는 이 산천 사랑으로 타고 함성으로 타고 마침내 마침내 탈 것으로 탄다 네 죽음은 천지에 때아닌 봄을 몰고 와 너를 묻은 흙가슴에 진달래 탄다 잘 탄다, 진아 너를 보면 불현듯 내 가슴 석유 먹은 진달래 탄다 '7080'의 감성이 그다지 상투적으로 .. 2015. 11. 18.
지난 국토 여행기16 - 다시 흥인문(興仁門)에서 서울에 바치는 반성문 20여 년 전, 회사 '쫄따구' 시절 회사를 방문하는 외국인 손님의 영접을 위해 공항으로 나가는 일은 나의 업무 중의 하나였다. 손님의 영문 이름을 커다랗게 써넣은 종이를 들고 (당시 KBS에서 주관한 이산가족찾기 행사가 절정을 이루던 무렵이어서 나는 이 종이를 ‘이산가족찾기 팻말이라 불렀고 그런 나의 업무를 '양놈 딱까리'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공항 도착 출구에 서서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동안, 나는 손님이 사는 나라와 손님의 얼굴에 대해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런 상상은 대개 괜스레 냉소적이면서도 사실은 부러운 감정을 동반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손님이 사는 나라의 부유함과 선진성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자유롭게(?) 먼 이국땅을 왕래할 수 있는 그의 삶에 대한 것도 포함하고.. 2013.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