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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6

제주 함덕 17 전형적인 가을 날씨. 티끌 하나 없는 하늘 아래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제 아내의 지인이 같은 숙소 옆방에 체크인을 했다. 함덕이 처음인 지인을 위해 아침에 빵집 "오드랑"에서 마농바게트를 사 오며 우리도 같은 것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로 인해 한동리에서 언덕과 들길을 따라 행원포구까지 걷는 것으로 평소보다 조금 늦은 아침 산책을 했다. 길은 밭담을 끼고 휘어지며 오르내렸다. 마치 오래간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따뜻한 감성이 샘솟는 길이었다. 그렇듯 걷는 일은 숨어있는 내면의 길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길옆 표지판에 박노해의 글이 쓰여 있었다.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내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세화포구 근처 연미정에서 전복밥을 먹었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식당이고 음식이었다.. 2022. 11. 5.
제주 함덕 16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직 옅게 남아 있던 아침 안개는 마을길을 따라 월정리 해변까지 가는 동안 말끔히 걷혔다. 그리고 시리게 푸른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텅 빈 해변엔 장난을 치며 오르내리는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파도소리와 함께 실려왔다. 지나가며 눈이 마주치자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말을 건네 왔다.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왔을까 짐작하며 물어보니 말레이시아에 왔단다. 그들은 초면의 이국의 낯선 남자 앞에서도 전혀 쑥스러워움 없이 다양한 포즈로 사랑을 표현했다. 나도 함께 즐거워 여기저기 좋은 배경을 추천까지 해가며 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내와 연애를 하던 젊은 시절 그들처럼 공개적인 장소에서 적극적인 사랑 표현을 해보진 못했지만 마음은 그 .. 2022. 11. 4.
제주 함덕 15 삼양해수욕장에서 한 아침 산책. 철 지난 해변은 바람과 파도소리만 잔잔할 뿐 조용했다. 함덕이나 김녕해수욕장과 달리 삼양 해수욕장은 해변이 검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에서 검은 바위와 돌이 널린 바닷가는 자주 보았지만 검은 모래의 해변은 처음이었다. 이곳이 유일한가? 모르겠다. 여름철엔 모래찜질로 유명하다고 한다. 삼양해수욕장도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해변을 천막으로 덮는 월동 준비가 진행 중이었다. 아침은 콘수프와 제철인 단감으로 했다. 점심은 식당 "골목"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아내는 해장국이나 내장탕, 곰탕 등을 대체적으로 싫어하는 편이지만 나를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해장국을 함께 먹어주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옛말에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이 있다. "골목" 옆에 있는 커피점 .. 2022. 11. 2.
제주 함덕 14 남흘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김녕서포구를 거쳐 김녕해수욕장까지 걸었다. 투명하고 서늘한 물빛의 바다에서 싱싱한 아침 기운이 바람에 실려 전해 왔다. 힘을 내서 걷자! 아침에 어울리는 말이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 정현종, 「아침」 - 용천수인 청굴물은 김녕 해안의여러 용천수 중에서도 유난히 차갑다고 한다.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 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2-3일씩 묵어가곤 했다고 한다. 김녕 성세기알 바닷가에 옛 민간 등대 도대불이 있다. 도대불은 제주 해안가 마을의 포구마다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바다에 생을 기댄 사람들로선 배들의 안전한 귀환이 제일 중요했을 .. 2022. 11. 1.
제주 함덕 13 아침 산책으로 올레길 19코스 북촌리에서 동복리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올레 패스포트에는 19코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바다만도 아니고 숲만도 아니다 바다, 오름, 곶자왈 마을, 밭··· 제주의 모든 것이 이 길안에 있다. 밭에서 물빛 고운 바다로, 바다에서 솔향기 가득한 숲으로, 숲에서 정겨운 마을로 이어지는 길의 전환. 지루할 틈이 없다." 오늘 길은 '솔향기 가득한 숲으로, 숲에서 다시 물빛 고운 바다로'였다. 동복리 바다로 내려오는 길에 핸드폰이 울려 꺼내보니 제주도에서 보낸 안전 안내 문자다. "이태원사고 관련 사고 수습과 전국적 애도 분위기 상황입니다. 각종 축제와 행사, 특히 할로윈 행사를 준비 또는 참여하는 분은 안전에 각별한 유의 바랍니다." 이태원사고? 할로윈 행사에 무슨 .. 2022. 10. 31.
제주 함덕 11(결혼38주년) 아침에 숙소 주변, 해변이 아닌 중산간 쪽으로 걸어보았다. 평범한 마을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귤밭을 만났다. 사진을 찍다가 귤 수확을 준비하고 있는 초로의 사내와 말을 트게 되었다. 이제껏 커다란 귤밭은 서귀포 일대에만 있는 걸로 생각했다는 나의 말에 그가 말했다. "빌레는 제주도 말로 돌인데 빌레 위의 흙 층이 얇아서 조천의 귤이 서귀포 귤보다 당도가 높아요." 내게 물론 그 말의 사실 여부를 파악할 지식은 없다. 하지만 그가 맛보라고 건네준 귤은 적어도 하나로마트에서 사다 먹은 귤보다는 맛이 있었다. 그는 극조생의 귤이라 농협에 납품하기 위해 수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3일 정도는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귤밭 가운데 있으면서도 또다시 돌담에 둘러싸인 무덤이 편안해 보였다. 오늘.. 2022.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