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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7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이미 쓰레기 장에 던져버린 역사의 오물을 다시 뒤적거리는 이들이 있다. 마치 자신들의 뿌리라도 찾는 양 자못 진지하다. 터무니없이 진지해서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들에겐 결국 비극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홍범도를 치우는 자리에 들어서는 이승만. 해방된 조국에 친일파를 득세시켜 집권하고, 전쟁 중 피난처에서도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비열한 정치 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양민 학살에 국민방위군으로 뽑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숨지게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부정선거를 획책하다 끝내 깡패들과 총탄의 야만에도 굴하지 않는 민중들의 저항에 쫓겨간 늙은 망령. 오래전 대학로 근처 이승만의 숙소 이화장을 지나며 썼던 글을 .. 2024. 2. 14.
변치 않는 사랑 아내가 지인과 길게 전화 통화를 한 후 내게 내용을 말해주었다. 처음엔 늘 하는 대로 소소한 가정사를 나누었는데,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서 여느 때완 다르게 정치 상황으로, 한 달 전 대선으로 옮겨 갔다. 정치 문제는 개인 간에 조심스러운 사안이라 그동안 둘 사이에는 대화에 올리지 않던 주제였던 것이다. 지인은 대선 결과에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대선 개표 중계를 보다가 급기야 울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지인은 자신의 암담한 심정을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했다가 (지지 후보가 다른 듯) 어정쩡한 반응에 답답함이 가중되어 있는 상태로 보였다. 그러다 아내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인하자 폭발하듯 감정을 쏟아 내었다. 대선 이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보는 인터넷 언론사에 적지 않은.. 2022. 4. 19.
케이팝 덕분에 경험한 작은 일들 미국에 주재할 때 미국 콜로라도 덴버로 아내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콜로라도 야구팀의 경기를 보기 전에 밥을 먹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식당에 들어갔다. 스무 살 안팎으로 보이는 여성 직원이 주문을 받고 난 후 물었다. "어느 나라 분인가요?" 한국인이라고 하니, 반갑다면서 조심스레 뜻밖의 제안을 했다. "주문한 것 중 음료비는 내가 내고 싶은데 괜찮겠는지 ······?" 의아해하는 아내와 내게 직원은 자기가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났으니 꼭 사고 싶다고 했다. 극구 사양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노래까지 조금 불러주었다. 혼자서 공부한 한국어 발음이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귀를 기울인 끝에 가까스로 안재욱의 "포에버"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로서도 꽤 오래된 .. 2022. 3. 20.
이창동 감독의『버닝』 모든 영화 감상글이 그렇겠지만 『버닝』은 더욱 영화를 보고난 후에야 어떤 설명이든 구체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장면 장면의 디테일 - 색상, 음악, 배우의 표정과 시선, 그리고 많은 대사에 은유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다운 탄탄한 구성의 줄거리를 갖고 있지만 그 요약만으로는 이 영화에 대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영화 『버닝』에는 종수와 해미, 그리고 벤이라는 3명의 젊은이가 나온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종수는 현재 배달 알바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의 대남 스피커 방송이 들려오는 파주의 시골 마을에서 소를 키우며 살다가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젊은 시절 중동에서 돈을 벌어온 아버지에게 아파트에 투자할 것을 권했으나 농사.. 2020. 12. 10.
내가 읽은 쉬운 시 117 - 김수영(金秀映)의 「오래된 여행가방」 아내와 여행을 하면서 간단한 기념품을 사곤 했다. 여행지를 주제로 한 그림이나 인형, 미니어쳐, 책, 사진엽서, 차(茶)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드는 것을 그때그때 사서 모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눈에 잘 띄는 곳에 그것들을 걸어놓거나 늘어놓고 오며가며 바라보면 즐거웠던 여행의 여운이 감미롭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수집품에 좀 더 실용적인 목적도 더해보자는 취지에서 컵으로 바꾸었다. 음료나 커피를 마실 때 그 컵을 사용하며 여행의 추억을 떠올려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컵은 모양도 크기도 색도 여행지만큼이나 다양했다. 나중에는 한두 개씩 사던 스타벅스의 컵으로 시나브로 촛점이 맞추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저것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점차 기념품이 늘어났다. 그러지 않아도 비좁은 집의.. 2019. 6. 22.
현민엄마가 적어 준 시 한편 (곱단이의 글) 일요일 성당. 시 한편을 봉투에 넣어 수줍게 전해주는 현민엄마의 얼굴은 풋풋한 여고생을 닮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시를 읽고 현민엄마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사람을 이웃으로 둔 것은 행복이다. 더군다나 먼 이국땅에서. =====================================================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김수영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언제 바람으로 스쳐만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밤하늘의 별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온갖 유혹과 시련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언제나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언제나 마음을 하느님께 .. 2013. 6. 27.
YELLOWSTONE 국립공원5 - LAKE OVERLOOK TRAIL 엘로우스톤의 전형적인 여름 날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머무는 이틀동안 밤이 깊으면 빗줄기가 텐트를 두드렸다. 그러다가 날이 새면 시치미를 떼 듯 하늘은 맑아 있었다. 해맑은 햇살과 공기, 숲이 주는 초록의 질감과 향기. 그속에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오전을 보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의자에 파묻혀 이웃 텐트의 어린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점심을 먹고나서도 한참을 한가롭게 지내다 계획했던 대로 트레일 한 곳을 걷기로 했다. 가까이 있는 WEST THUMB에 있는 LAKE OVERLOOK TRAIL 이었다. 차량으로 10분 이동을 하여 한 시간 남짓 걸으면 되는 코스였다. 오후가 되면서 먼 하늘에 비름 머금은 듯한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옐로우스톤 전체가 해발 3천미터 안.. 2012.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