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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6

발목 다친 손자저하 시작이 자못 요란·험난하다. 저하는 겨울방학 첫 주를 독감으로 보냈다. 고열이 위험 수치를 넘나들었다. 함께 하기로 했던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주는 저하가 축구를 하다 발목을 다쳐 왔다. 깁스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집에서 쉬며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다. 또다시 예약을 해두었던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 머물러야 했다. 활동공간이 집안으로 제약되니 저하 모시기가 더 어려웠다. 체스와 장기를 하고 보드게임으로 체커, 모두의 마블, GO FISH 등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밖에 나가 공놀이를 하거나 박물관이나 과학관에서 하는 체험활동을 하는 편이 쉬울 것 같았다. 역사 인물 알아맞히기에서 저하는 카드를 제일 많이 획득했다. "역시 역사에 대해선 내가 좀 알지." 자기 앞에 쌓이는.. 2024. 1. 18.
수수께끼와 마술의 한 해 올해 손자친구와 함께 한 놀이에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단연 수수께끼와 마술이었다. 수수께끼는 오래 전부터 자주 해왔지만 올해부터는 친구가 난센스 문제도 감을 잡기 시작했다는 점이 다르다. "물은 물인데 무서운 물은?" "???" 한참을 고민하다가 친구는 모르겠다고 했다. "괴물!" 답을 알려주자 친구의 거센 항의가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물이라고 했잖아요! 괴물을 마실 수 있어요?" 그러던 친구가 이젠 어설픈대로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감은 감인데 먹는 감이 아니고 노는 감은?" 친구를 위해 수수께끼를 모으다 보니 기발하고 재미난 것도 많았다. - 겉은 보름달이고 속은 반달인 것은? (귤) - 동굴 속에 들어갈 때 짐을 싣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빈몸으로 나오는 것은? (숟가락) - 더울 땐 옷 입고 .. 2021. 12. 29.
가을비 오는 날 새벽부터 시작한 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며 멈추질 않는다. 하루 사이에 기온도 냉랭하게 떨어졌다. 입동(立冬)이 지난 11월이니 겨울을 재촉하는 비라 해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내일까지 계속될 비는 단풍을 많이 떨굴 것 같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태주, 「11월」- 아내와 음악을 들으며 빈둥거리다 파전과 수제비를 해 먹기로 했다. 비 오는 날마다 해 먹는 단골 메뉴다. 블로그의 지난 기록을 뒤져보니 작년에도 이 맘 때쯤 비오는 날 해먹었다. (*지난 글 : 2020.11.19 "수제비 당기는 날" ) .. 2021. 11. 8.
2020년 10월의 식탁 코로나에 이어 손자친구 2호가 태어나면서 3대가 식사를 하는 기회가 이전보다 많아졌다. 그에 따라 내가 조리 가능한 음식의 종류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몇 가지 종류를 반복해서 만들어내고 있음을 사진을 보며 느낀다. 게으름에 타성이 더해진 까닭이다. 11월부터는 한 주에 최소 한 가지씩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누군가 죽어서 밥이다 더 많이 죽어서 반찬이다 잘 살아야겠다. -나태주 「생명」- 밥을 먹으면 손자는 기운이 난다며 두 손을 어깨 위로 뻗치며 "불끈 불끈 팡팡!"을 외친다. 반찬을 먹어 딸아이는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 젖을 준다. 잘 만들어야겠다. 2020. 11. 12.
사랑 '증명하기' *이중섭의 「부부」 한 사내가 증명서를 떼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다. 동사무소의 공무원은 신분증명서를 요구했다. 그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을 증명할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사내는 자신이 증명서의 본인이 맞다고 사정을 했다. "급해서 그런데 한 번만 인정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나 공무원은 법 규정을 들어 요지부동이었다. 자신을 증명해 줄만한 것을 찾아 사내는 몸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사내는 다시 한 번 더 사정을 했고 공무원은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자신의 몸과 지갑을 샅샅이 뒤지다가 사내는 속주머니 깊은 곳에서 구겨진 자신의 증명사진을 발견했다. 사내는 그것을 공무원의 책상 위에 탕! 소리가 나도록 호기있게 내려 .. 2020. 8. 7.
내가 읽은 쉬운 시 69 - 나태주의「그날 이후」 33년의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업무적으로 개인적으로 외국인들과 인연이 많았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세태에 그 나이까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분히 그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서로 이런저런 일로 지지고 볶고 부대끼며 지낸 여러나라의 -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폴, 중국, 홍콩, 인도, 대만, 미국, 멕시코 등등 - 그들. 퇴직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내게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건 아내와 딸아이였다. 이제까지의 직접적인 인연과는 다른 '그들'에게라도 그간의 고마움을 전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얼마간 공부를 하고 기회를 모색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부기관에서 해외로 내보내는 일이라 그런지 절차가 번거로웠다. 서.. 2017.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