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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조천7

제주 함덕 12 아침에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는데 자리에서 미적거리다가 하루 거르기로 했다. "어제 기념일 준비로 피곤했나?" 아내가 웃었다. 아침 식사는 어제 남은 샐러드에 달걀 프라이를 더해서 먹었다. 점심 무렵 함덕해수욕장에서 아내와 201번 버스를 탔다. 조천리 정거장에 내려 해변의 올레길 18코스에 합류를 했다. 바닷가 마을 곳곳에 용천수가 있었다. 용천수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식수는 물론 빨래물과 목욕물을 얻을 수 있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 조천지역에는 30개가 넘는 용천수가 남아 있다고 한다. 용천수 탐방길 안내도에는 23곳의 용천수가 표기되어 있다. 궷물(궤물), 절간물, 수거물, 수룩물, 앞빌레, 알물.. 2022. 10. 30.
제주 함덕 6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영산이었다. 영산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하여 영산은 어렴풋이 그 있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영산은 밤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 달빛 속에 또는 별빛 속에 거므스레 그 모습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 그 모양이 어떠하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영산이 불현듯 보고 싶어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더니 이상하게도 영산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미 낯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 김광규, 「영산(靈山)」- 구름 속에 숨은 제주의 영산 한라산을 바라보다 떠오른 시. 세월의 구름 .. 2022. 10. 24.
제주 함덕 5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의 소설 제목처럼 아침에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다. 한라산이 있던 자리는 구름에 가려 마치 지평선이 있는 듯했다. 오늘은 아침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미숫가루와 달걀프라이로 아침을 먹고 MLB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경기를 보았다. 샌디에고 파드레즈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3차전이었다. 우리나라 김하성 선수가 샌디에고의 1번 타자로 뛰었지만, 김하성 선수가 없었더라도 아내와 나는 샌디에고를 응원했을 것이다. 7년 넘게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야구는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다. 미국에 사는 동안 샌디에고의 홈구장 펫코파크를 여러 번 갔었다. 미국의 다른 지역을 여행을 할 때마다 그곳의 야구장을 방문하는 것을 계획에 꼭 넣었다. 오늘 샌디에고는 져서 시리즈 통산 1 : .. 2022. 10. 23.
제주 함덕 4 아침 한라산 위ㄹ 흰 구름이 몰려들어 있었다. 어제까지 쌀쌀하던 기온이 다시 올라가 푸근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가을 본연의 날씨로 돌아온 것 같았다. 오늘은 해변 반대쪽으로 산책을 했다. 일주도로를 기준으로 해변 쪽은 식당과 카페 같은 상업적인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데 반해 반대쪽은 제주인들이 사는 주거시설이 많았다. 산책에서 돌아와 하릴 없이 음악을 들으며 빈둥거렸다.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아 간편식으로 아침도 먹지 않았다. 아내도 그렇다고 했다. 점심 무렵에 오드랑 베이커리의 빵으로 아침 겸 점심을 했다. 빵을 사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아내의 운동도 할 겸 직접 가서 먹었다. 숙소 주변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한가로웠다. 아마 도심에서 벗어나 있고 유명 관광지가 아니기 때.. 2022. 10. 22.
제주 함덕 3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에 나가 한라산 안부를(?) 묻기로 했다. 한라산은 오늘도 어제처럼 몸 전체로 밤새 안녕함을 전해주었다.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며 다시 오드랑 베이커리에 들렸다. 어제 마농바게트를 먹었다고 했더니 직원은 인절미브레드를 추천해 주었다. 아내는 단맛이 너무 강하다며 어제의 마농바게트를 지지했다. 점심은 산책길에 눈여겨봐둔 제주산방식당. 오래전부터 모슬포항 부근에서 이름을 알리더니 이제는 제주 곳곳에 지점을 연 모양이다. 함덕점은 올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아내는 비빔면, 나는 고기국수를 만두 두 개가 같이 나오는 세트로 주문했다. 예상대로 아내는 밀면을 좋아했다. 젊은 직원의 경쾌한 목소리도 맛을 더했다. 식당 맞은편에 "만춘서점"이란 작은 책방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2022. 10. 22.
제주 함덕 2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맑아 한라선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새벽녘에야 잠들었을 아내가 깰까 조심스레 문을 닫고 숙소를 나섰다. 초행의 숙소 주변을 눈에 익히고 아내와 오늘 갈 곳 미리 둘러볼 겸 산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여행에서 아침마다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이번 여행은 함덕해수욕장만 왕복하며 보낼 수 있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허리로 인한 소박한 바람이었다. 숙소에서 함덕해수욕장에 이르는 도로의 상태를 살피고 소요시간을 체크하며 걸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대략의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을 해보아야 했다. 해수욕장은 멀지 않았다. 편도로 채 10분 남짓 걸렸다. 아내의 걸음으로는 거기에 추가로 10.. 2022. 10. 22.
제주 함덕 1 지난여름 제주도 여행을 위해 예약을 했다. 그 후 아내가 불운한 사고로 허리를 다쳐 취소를 할까 생각했지만 예약금을 날려도 그냥 두기로 했다. 여행까진 2달 정도가 남아 있어 그 시간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아내의 상태는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는 집안에서 보조기를 벗고 걸을 정도가 되었다. 마침내 담당의사는 한라산 등반을 안 하는 조건으로 흔쾌히 여행을 허락해 주었다. 한라산 등반? 언감생심이다. 숙소 주변을 산책하는 것을 여행의 전부로 삼았다. 아내가 많이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한 시간 남짓 천천히 산책을 하는 정도라 우선은 제주도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집에서 출발하면 제주도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네다섯 시간을 눕지 못하고 계속 앉거나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 2022.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