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1605

들통난 꼼수 여권 만료일이 다가와서 아내와 함께 새로 만들기로 했다. 재발급엔 사진 한 장이 필요했다. 책상 서랍에 보니 여러 가지 지난 사진이 많았다. 증명사진, 여권 사진, 비자용 사진, 명함판 사진, 알 수 없는 크기의 사진 등등.문제는 6개월 이내 촬영되었어야 한다는 여권 갱신 조건에 맞는 사진은 없다는 것이었다.나는 아내에게 그 중에서 크기만 맞는 걸로 아무거나 한 장 골라서 쓰자고 했다."6개월 이내에 찍었다고 하면 되잖아? 무슨 차이가 있겠어?"'모범시민'인 아내는 별로 내켜하지 않아 했다.하지만 세상일은 종종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않던가.아내는 마지 못해 내 의견에 떠밀려 언제 찍었는지 모를 사진을 들고 구청엘 갔다.여권 담당 공무원은 좀 의심스러워하는 눈치로 사진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2025. 2. 21.
쫄지맙시다 장기를 둘 때 상대방이나 곁에서 구경을 하는 사람 모두가 졌다고 생각하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한(漢)이나 초(楚)가 하나 남을 때까지 지지 않았다고 우기는 장기를 '뚱이 장기'라고 한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손가락질하건 말건, 자기 생각만 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뚱이'라고 부르는 데서 비롯되었고,  이 말은 옛 중국사람들이 우리를 얕잡아 불렀던  동이(東夷)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날리면, 대왕고래, 계몽령, 인원, 요원, 의원, 달그림자 등등 입만 열면 '구라'인  '그 X'이야 자기 생사가 걸렸고 또 자신을 닮은 아바타의 'Yuji'도 걸렸으니 오만가지 '뚱이질'을 다하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깃발과 아우성을 보태는 작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얼마 전 광화문역 근처에 나갔다가 마주.. 2025. 2. 20.
아내가 외출한 날 아내가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기왕이면 저녁까지 먹고 와. 저녁 준비 안 하게."현관문을 나서는 아내에게 농담을 던졌다.아내가 외출하고 나면 집 안이 갑자기 휑하게 넓어진다.약간의 해방감(?)과 함께 한가하다가 심심해진다.유튜브로 그레고리안성가를 들으며 소파에 길게 누워 책을 읽는다.혼자 있으면 집중이 잘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아내가 없으면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유튜브를 끄고 넷플릭스로 돌려도 시들하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일은 걷는 것이다. 집 근처 대학으로 나갔다. 날이 제법 쌀쌀했다.며칠 동안 푸근한 날씨에 찰랑이던 호수 표면엔 다시 살얼음이 잡혀 있었다. 윤슬은 얼음 위에서 반짝였다.졸업이 가까운 모양이다. 방학으로 조용한 교정 곳곳에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졸업생들의 사진과 함께 익살스.. 2025. 2. 19.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떠난이의  옛 사진 앞에 서면 즐거웠거나 아쉬웠던 기억이 모두 아픔으로 치환된다.그럴 때 아픔은 위로나 극복으로 채워야 할 미진한 감정만이 아니다.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늘 새롭게 발현되는 정직한 반성이기도 하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만한 우주도 없다-  파블로 네루다, 「점(點)」- 2025. 2. 17.
2055년 2055년을 가상현실(VR)로 큰 손자저하와 체험했다.행사장에 가기 전 손자저하가 선택한 식당에서 저하의 선택 메뉴로 밥을 먹었다."2055년? 그땐 우리가 100살이 다 되었을 텐데 살아있기나 하려나?" 아내의 말에 저하가 말했다."왜요? 요즈음 의학이 발달해서 100살도 넘게 산데요."제법 의젓해졌다는 생각도 잠시.아내와 딸아이가 서로 식대를 계산한다고 설왕설래를 하다 딸아이가 나서자 저하가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는 엄마보다 일찍 죽을 것이니까 돈을 빨리 써버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저하들은 가끔씩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어서 실소를 하게 만든다.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 둘이서 > 영화를 보며 낄낄거린 적이 있다.딸아이가 유치원때 비디오로 보던 영화를 대를 건너 OTT로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하.. 2025. 2. 16.
국가와 법에 관한 책 두 권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와 조국의『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읽었다.유시민의 책은 오래 전에 한 번 읽었지만 내용이야 이미 기억 저 편에 있고, 또 2017년에 새로 고쳐 썼다고 하니 처음 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국의 책은 2022년에 출간되어 처음 대하는 것이었다.책을 읽는데 별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을리 없는,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남독을 하는 백수의 독서지만 이 책에는 특별히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이라는 이유를 붙여도 되겠다.날만 새면 '법 법 법' 하는 뉴스가 홍수인 세상 아닌가.두 책 모두 읽기에 어렵지 않아 책장이 잘 넘어간다. 유시민이야 워낙 간결하고 정확한 단어를 사용해서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는 글솜씨라 그렇고, 조국의 책은 전문 학술용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 강의한 내용을 .. 2025. 2. 15.
이본(異本) '호랑이와 곶감' 손자 저하 2호에게 경찰과 도둑은 떼놓을 수 없는 한 쌍이다.저하는 늘 경찰이고 나는 매번 도둑이다. 이 역할 분담에 관한 한 저하의 의지는 절대불변이다.'이번에는 할아버지가 경찰 하면 어떨까? 니가 도둑 하고' 권해보면 펄쩍 뛴다."나는 멋진 경찰이거든요."아래 '호랑이와 곶감' 마지막 부분의 급격한 반전(?)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도 숨어 있다.- 최계락, 「꽃씨」-은퇴 후 어떤 강의를 수강하는 도중 '각자 가지고 싶은 초능력을 한 가지씩 적고 그 이유를 발표하라'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손자의 마음을 읽고 싶다고 적었다.저하의 변화무쌍한 꽃씨 같은 속마음.그리고 그 '꽃씨'가 키워낼 미래. 2025. 2. 13.
화이트 대보름 밤 사이 눈이 왔다.화이트 대보름."나는 어렸을 적부터 설날보다 대보름이 좋더라."내가 신혼 초에 한 말을 잊지 않는 아내는 매년 보름날이면 여러가지 나물을 준비한다.다른 우리 전통 음식이 그렇듯 보름나물도 손이 많이 간다.말린 나물을 불리고 볶거나 무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젠 오히려 내가 아내에게 가짓수를 줄이라고 말한다. 올해는 이제까지 보름 중 가장 적은 가짓수의 나물을 만들었다. 가짓수는 줄었지만 양은 늘었다. 딸아이네와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내가 만든 것은 토란대볶음 뿐이다.어제저녁에 아내와 나 둘이서 먼저 먹었다.오늘 저녁엔 딸아이네와 함께 먹을 것이다.손자들은 나물이 맛이 없다고 왼고개를 저을 것이고 아내는 한두 젓가락을 더 권해볼 것이다.설득은 오래가지 않고 손자들을 .. 2025. 2. 12.
영화 <<아무르>> OTT에서 노인 주제의 영화를 만나면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화면 속 노년의 삶에 몰입하게 된다. 죽음에 대하여구순(九旬)을 맞은 아버지에게 한 아들이 축하의 말을 전했다."아버지 건강하셔서 백수(白壽)를 누리세요."그 아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뭔가 찜찜한 아버지의 기분을 눈치챈 다른 아들이 나섰다.jangdolbange.tistory.com늙는다는 것.늙고 병든다는 것.그리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가끔씩 아내와 이런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가 아니라 치매나 간병, 먼저 떠난 사람과 뒤에 남게 될 사람에 대한 '실용적'인 이야기다. 그마저 막연하게 언저리만 맴돌았을 뿐 깊이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설사 오래 얘기를 나눴다 하더라도 어떤 명.. 2025.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