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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363

3·1절 105주년 일제 강점기 망령들의 무덤을 파내어 해괴한 분칠로 재활용을 하고, 독도를 국토에서 지우는가 하면, 식민지의 수탈과 폭력과 학살을 근대화로 왜곡하고, 횟집 수조의 물을 퍼마시며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괴담이라 윽박지르는 저들도 오늘 기념식 장에서는 독립, 민족, 조국, 통일같은 말을 입에 담을까? "저 왜적들은 조금 강성함을 믿고 기세가 교만하여 이웃 나라를 협박하는 것을 능사로 하며, 맹약(盟約) 파괴하는 것을 장기로 삼아 이웃의 의리와 각국의 공론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나라를 빼앗으려는 방자한 짓을 꺼리지 않습니다. ······마땅히 먼저 박제순 이하 다섯 역적의 머리를 베어 나라 팔아넘긴 죄를 밝히고······" 1905년 을사늑약에 분노하여 면암 최익현이 쓴 「請討五賊疏(오적들을 처단할 것을 청하는 상.. 2024. 3. 1.
2월29일 처음 그림을 대했을 때, 창고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설명을 보니 시베리아로 실려가는 수송 열차 속 죄수들이라고 한다. 아마도 러시아의 차르(tsar)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실현시키려 했던 혁명가들일지도 모르겠다. 열차가 잠시 정차하는 동안 천진난만한 아이는 빵 조각을 비둘기에게 나눠주고 있고 죄수 가족과 동료인 듯한 사람들이 이를 보며 웃고 있다. 기차의 안쪽에 제모(制帽)를 쓴 사람은 죄수들과 동떨어져 시선을 반대편으로 둔 채 서 있다. 기울어가는 전제 정권의 말단 호송 책임자라도 되는 것일까? 죄수들의 분위기는 여유롭고 화기애애한 반면 검은 실루엣의 사내는 침울하고 외로운 독불장군처럼 보인다. 험난한 유형 생활을 떠나는 처지임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절망스럽거나 너무 비장하지 않다. .. 2024. 2. 29.
단 한 사람 새해 결심 중의 하나가 일주일에 (어떤 그림이라도) 그림 한 장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어반스케치 모임의 회장님이 그러지 말고 하루에 10분씩만 그리는 걸로 하라고 했다. 10분은 부담이 없지만 일단 한번 펼친 스케치북을 10분 만에 닫는 경우는 없을 것임을 노린, 나 같은 '귀차니즘' 중독자를 위한 독려의 방법이겠다. 새해도 두 달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서야 그 말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방학 중인 손자를 돌보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그림 두 장을 그렸다. 위 그림은 이중섭의 그림 중에 쉬운(?),「다섯 어린이」를 따라 한 것이다. 이중섭이 헤어져 멀리 있는 두 아들을 그리워 하며 그렸을 것이다. 나는 요즘 매일 함께 뒹구는 손자저하들을 생각하며 그렸다. 두 번째 그림 역시 이중섭의 「부부」를.. 2024. 2. 28.
손자저하들의 운동 1호는 축구광이다. 장차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되어 나라를 빛내겠다고 유치원 졸업 때 선언(?)했을 정도다. 처음엔 취미반에서 시작했지만 작년엔가 60명 후보 중에 20명을 뽑는 테스트를 거쳐 선수반에 들게 된 후론 자부심이 '뿜뿜'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연습을 하러 간다. 한 번은 연습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온 저하에게 '너무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 정도는 선수반에게 기본이라는 듯이 대답도 자못 기세등등했다. "할아버지, 나 선수반이야." (요즈음은 매일매일 비행기를, 그것도 오래 탈 수 있다는 사실에 기장으로 꿈을 바꿀까 고민해보고 있는 중이긴 하다.) 저하가 주말에 12개 팀이 참가하는 유소대축구대회에 출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치 월드컵에 나가는 국가대표마냥 긴장감을 보이면서도 .. 2024. 2. 26.
대보름 쇠기 지신밟기의 흥겨운 풍물 가락, 달집 태우기,연의 줄을 끊어 액운과 함께 날려보내기, 이웃마을과 돌싸움, 더위팔기, 아홉가지 나물을 아홉 번 먹기, 부럼 같은 다채로운 행사와 놀이, 이야기가 대보름이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못으로 깡통에 많은 구멍을 뚫어 불을 피워 돌리는 쥐불놀이였다. 일 년 중 유일하게 허락받은 보름 전날인 상자일(上子日) 저녁의 불장난. 이제 풍물은 아파트에서 사라졌고, 달집 태우기나 쥐불놀이는 텔레비전 뉴스에서나 만나게 된다. 더위팔기는 시시해졌다. 아침에 잠에서 깬 손자친구 1호에게 내 더위를 팔 수 없어 이름을 부르고 '니 더위 나한테 줘라' 했더니 무슨 장난인가 싶어 멍한 표정을 짓는다. 내력을 설명해 줘도 별 재미없다는 무관심의 표정을 지었다. 설날에서 보.. 2024. 2. 25.
영화 <<저스트 머시>> 1986년 앨라배마에서 18살의 백인 여성이 살해되었다. 다음 해 가난한 벌목공 월터 맥밀란이 범인으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사형이 선고되었다. 증거는 없었고 한 백인 범죄자의 증언만 있었다. 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많은 흑인의 증언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결국 그가 범인이 된 이유는 '딱 보면 범인인지 알 수 있다'는 백인 경찰과 검찰의 신통술 때문이었고, 그보다 앞서 그가 단지 흑인이기 때문이었다. 기록을 검토한 인권 변호사 브라이언은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차별과 심지어 살해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헌신적인 노력을 다 한다. 그리고 1993년 마침내 앨라바마 주 대법원의 재심을 이끌어낸다. 재판과 청문회에서 브라이언이 한 발언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2024. 2. 23.
봄눈 밤 사이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에 손자저하들과 창밖 풍경을 내다보았다. "나무가 하얗네." 저하2호가 말했다. 봄기운에 눈이 서둘러 사라질까 염려되어 핸드폰에 몇 장 담아 보았다. 나무가 눈을 뜨면 저 눈은 자취도 없을 것이다. 나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눈. 자기를 깨운 것이 봄바람이거나 봄비거나 봄볕인 줄 알겠지. 나를 깨운 것은 내가 막 눈을 뜬 순간 내 앞에 있는 바로 그가 아닐지도 몰라. 오,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나를 바라보다 사라진 이여 이중으로 물거품이 된 알지 못할 것들이여. - 황인숙, 「봄눈 온다」- 저하1호의 등굣길을 함께 하고 오자, 뒤이어 2호가 등원 준비를 하고 있다. 2호는 요즈음 갑자기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린이집 등하원 길에 몇 번씩 반복해서 이야기.. 2024. 2. 22.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기 잠깐 사이에 새해도 2달 가까이 지났다. 한 겨울이었다가 입춘에 우수까지 지났으니 곧이어 대동강 물도 풀리고 개구리도 눈을 뜨리라. 새해엔 반드시 꼭 해야겠다는 결심까지는 아니어도 대충 이런 걸 해보리라 세웠던 계획이 몇 가지 있다. 정치인들 선거로 중간 평가를 받듯 그 계획들의 실천 여부를 꼽아 보았다. 늘 그래왔듯 결과는 신통찮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산 탓이다. 책을 좀 더 읽고 블로그에 매일 글을 하나씩 올리고 일주일에 새로운 음식을 한 가지 만들겠다는 건 그런대로 된 것 같으나 안 한 것은 그 몇 배다. 일주일에 한 번 산에 오르고 10킬로미터 달리기 하기, 그림 한 장 그리기 그리고 2주에 간단한 마술 한 가지씩 손에 익히기 따위가 그랬다. 2월이 가기 전에 계획을 결심 수준으로 끌어.. 2024. 2. 20.
우리는 완전 '편파'다 어제 손자저하가 품띠(빨간색과 검은색이 섞인 띠)를 따러 국기원에 갔다. 품세와 자유대련을 통과해야 했다(사실 누구나 다 통과한다). 품세쯤이야 헷갈리지 않는다고 평소 자신만만해하더니 실제로도 시연을 무난히 해냈다. 이어진 한 30초 동안의 짧은 대련에 아내는 가슴이 떨린다며 긴장을 했다. 아이들 놀이에 떨릴 것까진 없는 일이지만 올림픽 결승전처럼 흥미롭게 보았다. 축구와는 다른 개인 경기(?) 아닌가? 대련이 끝나고 아내와 나는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저하가 상대를 케이오시켰을지 모른다고, 심판이 있다면 전원일치 판정승이 분명하다고 깔깔거리며 한일 월드컵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16강전 심판을 보았던 모레노 주심 이상으로 '편파' 100%의 평가를 내렸다. 오늘은 우수(雨水)다. 눈이 녹아서 비나 물.. 2024.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