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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362

조선간장과 콩나물 김어준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의 에서 콩나물 음식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콩나물비빔밥과 콩나물국밥으로 조리법은 간단했다. 다진 표고버섯 2컵과 다진 소고기 1컵을 볶다가 조선간장 2숟가락을 넣고 다시 물 1컵을 넣어 조린 후, - 이를 참기름과 밥과 함께 비비면 콩나물비빔밥이 된다. - 또 이를, 멸치 육수에 콩나물을 넣고 끓여 토렴한 밥에 고명으로 얹으면 콩나무물국밥이 된다. 두 가지 다 은근하면서도 깔끔한 맛이었다. 양조간장을 넣지 않고 조선간장으로만 요리를 한 것은 요리 초보인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조선간장은 짜다는 선입관이 있어 쓰는데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이 콩나물 음식에 조선간장만 넣고보니 양조간장과는 다른 풍미가 있었다. 앞으로 가급적 조선간장으로 요리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2024. 2. 17.
하늘아이들 별을 보았다. 깊은 밤 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 저 별은 하늘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 이준관, 「별 하나」- 가만히 아니, 늘 힘을 주어 꼬옥 끌어안게 되는 두 개의 별. 나는 그걸 참기름을 짜낸다는 뜻으로 "쌔서미"라 부르고 두 명의 손자저하도 그걸 이해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하 1호는 슬슬 내 품에 오래 안겨있지 않으려 버둥거린다. 뿐만 아니라 사진도 잘 안 찍으려 고개를 돌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습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놀려주곤 한다. 1호는 요즈음 태권도 승급을 위해 맹연습 중이다. 태권도는 자부심이기도 해서 사진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래간만이네요." 2호는 하루 만에 만나도 뜬금없이 이런 인사를 해서 실소를 하게 만들곤 한다. 2호가 나름 .. 2024. 2. 16.
해피 발렌타인데이 손자들을 돌보러 가는 길에 사위가 카톡을 보냈다. "발렌타인데이 쵸코렛 하나 준비해 두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아내에게 물었다. "근데 발렌타인데이에 남자가 여자에게 쵸코렛 주는 거야? 아니면 여자가 남자한테?" "글쎄 사위 덕분에나 먹어볼까 장돌뱅이와는 수십 년 살아도 발렌타인 날 뭘 받아보질 못해서······." 아내는 가끔씩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 정곡을(?) 찌르는 반격을 한다. 물론 나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내 역시 '여자가 남자에게 쵸코렛을 사주는 날'이라는 인터넷 검색 결과에 개의치 않는다. 어쨌거나 커피에 곁들여 먹은 딸아이네 표 쵸코렛은 달콤했다. 수천 년에 또 수천 년도 부족하리 우주의 한 별 지구 지구 위의 파리 그 파리의 몽수리 공원에서 겨울 햇빛 아래 어느 날 아침 나와 .. 2024. 2. 15.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이미 쓰레기 장에 던져버린 역사의 오물을 다시 뒤적거리는 이들이 있다. 마치 자신들의 뿌리라도 찾는 양 자못 진지하다. 터무니없이 진지해서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들에겐 결국 비극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홍범도를 치우는 자리에 들어서는 이승만. 해방된 조국에 친일파를 득세시켜 집권하고, 전쟁 중 피난처에서도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비열한 정치 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양민 학살에 국민방위군으로 뽑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숨지게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부정선거를 획책하다 끝내 깡패들과 총탄의 야만에도 굴하지 않는 민중들의 저항에 쫓겨간 늙은 망령. 오래전 대학로 근처 이승만의 숙소 이화장을 지나며 썼던 글을 .. 2024. 2. 14.
겨울나무 산책을 하며 헐벗은 겨울나무가 눈에 들어올 때면 동요 를 부르곤 했다. 아니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떠올리며 세상의 모든 겨울나무는 '세한도 속의 소나무'거나, 백석의 시에 나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언덕 위에 줄 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말없이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2024. 2. 13.
책『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눈으로는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따라가는 마음은 힘들었던 책. 어느 날 딸의 하얀 팔 위에 수많은 칼자국을 보게 된다. 딸아이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뭔가 잘못되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고 말한다. 딸은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 즉 조울증 진단을 받게 되고, 그 후 7년간 16번이나 보호병동에 입퇴원을 반복한다. 자식이 아플 때 그럴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내가 아프고 싶은 것이 세상 부모의 마음 아니던가. 책은 그런 자식과 자식의 병을 이해하기 위해 엄마가 보낸 안간힘의 7년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둘 다 의사인 부모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연구와 통계자료를 뒤지고, 적절한 약을 찾고, 여러 가지 방법의 치료를 시도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아이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이 책은 .. 2024. 2. 12.
와 설날이다! 어릴 적 설날은 설빔을 기다렸다가 맛난 음식을 기다렸다가 무엇보다 세뱃돈을 기다리는 날이었다. 세배를 하고 난 뒤 어른들이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는 돈의 액수를 조바심치며 가늠해보곤 했다. 이제 내게 설날은 이틀 전에 보았으면서도 '오래간만이네요?'라고 품 안에서 뜻밖의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2호) 손자를 기다리는 날이다. 드디어 띵동! 저하들이 왔다. "누구세요?" 이미 카톡으로 알고 있지만 묻는다. "도둑이에요." 2호저하의 유모어다. 아내와 나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긴다. "아아니∼! 대감 어쩐 일이시오?" 요새 설빔은 큰 의미가 없다. 아니 설빔이란 게 특별히 없다. 아마 내 어린 시절의 설빔보다 지금 아이들의 평상복이 더 좋을 것이다. 저하들에겐 설빔은 단지 평소와 다른 거추장스러운 옷일지도 .. 2024. 2. 11.
귀성열차 80년대 나는 지방에서 근무하며 명절이면 서울로 올라오는 '역귀성'을 했다. 긴 시간을 이동하여 본가와 처가에 하룻밤씩을 자고 다시 같은 길을 내려와야 하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한 번은 일이 있어 명절에 서울로 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저녁이 되자 대부분 고향으로 떠나 몇 집만 불이 켜진 텅 빈 지방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는 적막함과 괴괴함이 가득했다. 귀성이 없는 3일의 휴가는 길고 여유로웠지만 동시에 우리 가족만 마치 절해고도에 고립되어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고속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들과 붐비는 기차역 풍경을 연신 보여주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이런저런 짐을 꾸려 바쁘게 오르내리는 명절의 시간에 번거롭고 고단한 이상의, 그렇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위로와 신명 같은, 무엇인가가 있다.. 2024. 2. 9.
보고 듣고 말하라 무려 159명···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현실· 서둘러 차려진 위패나 영정이 없는 분향소. 유족 없는 일방적이고 거침없는 조문. 슬픔도 빨리 결제하고 낡은 파일 속에 집어넣어야 할 거추장스러운 업무 중의 하나였을까? 끝내 죽음은 죽은 사람들의 몫일뿐 어떤 이유도 잘못한 사람들도 없는······ 1년이 지난 그날에도 여전한 그들만의 '따로 혹은 나 홀로 애도'. 단 10분만이라도 만나 달라는 오체투지의 애원에도 흔들림 없는 냉담. 그리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참사에 '할 만큼 했다'는 자화자찬의 마무리.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 = =이하 에서 인용 = = = 십자가의 길-3 옷을 벗기다 붉은 망토를 입히다 가시나무 관을 씌우다 무릎 끓어 조롱하다 침을 뱉다 갈대로 .. 2024.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