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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601

인연과 당구 며칠 전 내가 '샌디에이고 향우회'라고 부르는 모임을 가졌다.향우회라고 거창한 호칭을 붙였지만 사실은 회사일로 샌디에이고에 주재를 할 때 만나 20여 년 동안 알고 지내 온, 나를 포함 단 3명의 모임이다."하나도 안 변했네."악수를 나누며 립서비스일지 사실일지 모를 덕담을 주고받았다. 샌디에이고 '향우회'박용하 시인이 썼다."흘러간 것은 물이 아니라 흘러간 물이다흘러간 물을 통해 흘러갈 물을 만진다"라고.샌디에이고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함께 청계산을 다녀왔다.원터골에서 매봉에 올랐jangdolbange.tistory.com모임 이튿날 한 친구가 ''정말 안 변한 걸까? 팔이 안으로 굽는 걸까? 아님 기억과 현실의 왜곡일까? 어쨌든 '우리'라는 힘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나는 '안.. 2025. 4. 30.
아까운 햇빛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햇빛이 가득한 건근래 보기 드문 일 오랜 허기를 채우려고 맨발 몇이 봄날 오후 산자락에 누워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햇빛을 연초록 잎들이 그렇게 하듯이 핥아먹고 빨아먹고 꼭꼭 씹어도 먹고 허천난 듯 먹고 마셔댔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 나희덕, 「허락된 과식」- 햇빛이 눈부시다. 찬란하다.가까운 집 주위에서 만나는 꽃도 나뭇잎도 덩달아 그렇다.계절은 여전히 소란스런 세상을 덮을 만큼 넉넉하고 충만하다.흔전만전 쏟아져내리는 햇빛이 아까워 오늘도 아내와 걸으러 나갈 수밖에 없겠다. 2025. 4. 28.
검지조귀희연대사 2002년 월드컵 4강 때 히딩크 감독이 말했던가."나는 아직 배고프다."올바른 세상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소망도 아직 '배가 고프다.''그 X'을 '탈옥' 시키고 뭔지도 모를 전원합의체라는 의미를 알게 해 준 '판새'나, 중요한 수사엔 미적거리면서 엉뚱한 수사엔 속도를 내는 '검새'들을 보며 아직 내란의 그릇이 비워지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들이 그렇게 얽히고설킨 한 몸통의 이익공동체라는 생각에 '검지조귀희연대사'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합쳐 보았다.*촛불행동의 영상을 변형하였음.우리는 촛불도 나누어 먹는다밝음보다 어둠을 더 많이 섞어 만든햇빛보다 별빛을 더 많이 섞어 만든촛불을 한자루씩 나누어 들고물고기가 물에서 물을 찾듯이오늘은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마음의 어둠이 너무 어둡다광화문을.. 2025. 4. 27.
고열? 멀리 차버려! 감기가 낫더니 장염. 2호의 열이 내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1호가 목감기로 다시 고열.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걸핏하면 옮아오고 또 옮긴다. 열은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짧은 시간에 치솟기에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병원에서도 열은 별다른 방도가 없어 가능한 해열제와 미온수로 집에서 잡아야 한다. 당사자인 저하들도 부모도 고생이다. 나도 그렇게 컸다. 내게 남아있는 어머니에 대한 최초의 기억도 그렇다.언제였던가요, 어머니. 세찬 비바람과 함께 천둥 번개가 치던 밤 저는 어머니 등에 업혀 있었지요. 그때 아마 저는 열 때문에 끙끙 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칭얼거렸던가요? 어머니께서 저를 어르시던 근심스러운 목소리가 기억이 납니다. 번개가 칠 때마다 파란색으로 변하던 방문의 창호지와 순식간에 검은 그림자로 나.. 2025. 4. 26.
네 발에서 두 발로 큰 손자저하가 두발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가 날렵한 자전거를 사주었다. 이제 한두 번 타 본 거라 아직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지만 어려운 게 아니니 곧 몸을 세우고 달리게 될 것이다. 나도 비슷한 나이에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때까지 탔던 세발자전거가 시시해져 버리고 나면 어른 자전거를 탈 때까지는 키가 작아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는 레저용 자전거라는 것이 없었다. 주위에 있는 어른 자전거는 대개 모두 짐을 싣는 용이었다. 우리집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농산물은 리어카나 소달구지로 실어날렀기에 구태여 자전거가 필요 없었다. 동네 다른 친구들의 사정도 같았다.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동네 쌀가게의 배달용 자전거로 배우기 시작했다.가게 점원은 20대의 청년이었는데.. 2025. 4. 25.
무덤 밖에 계신 그리스도 2025년 4월 20일 부활주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강론하셨다.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이 대독한 강론에는 카톨릭을 넘어 모든 종교와 종교인들이, 그리고 올바르게 일상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종교와 삶의 보편적 진리가 담겨 있다.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의 돌이 치워진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깜짝 놀란 두 제자도 길을 나서는데, 복음서에 따르면 “두 사람이 함께 달렸다”(요한 20,4)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달리고 있습니다!한편으로는, 그들이 달린 이유가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리아 막달레나, 베드로, 요한의 서두름은 마음의 갈망, 곧 .. 2025. 4. 23.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80년, 이른바 '할 만큼 했다'는 '서울역 회군'에 저들은 5.17 비상계엄의 총칼로 답을 했다.87년 항쟁에선 직선제라는 형식을 얻고 머뭇거리는 사이 다시 저들이 살아났다.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늘 더 큰 먹구름이 되어 우리 위에 드리운다.지금은 단지 수괴 한 명을 겨우 제거했을 뿐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잔당들은 여전히 적반하장과 아가사창(我歌査唱)의 궤변과 안하무인의 행보로 준동 중이다. 지난 역사에서 보듯 개혁이 실패한 자리는 더 큰 파시즘의 온상이 된다.여전히 '몰아쳐야' 할 때이다.나는 본디오 빌라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평화가 있는 곳에는 진리가 없고 진리가 있는 곳에는 평화가 없다는 말을 하였다. 그와 같이 나도 평화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칼을 가지고 왔다. 나는 우리가 마땅.. 2025. 4. 20.
할머니의 설움 아빠 엄마(딸과 사위)가 퇴근하면 손자저하들과 작별할 시간이다.초등학생인 첫째는 아쉬움 속에 선선히 작별을 하지만, 둘째는 사소한 걸 트집 잡아 투정을 부리거나 평소에는 거부하던 책을 읽어달라기도 하고 (자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물건을 들고 와 무슨 비장의 무기라도 되는 양 수다를 늘어놓기도 한다.지연작전을 쓰는 것이다.할아버지는 남고 할머니 혼자 가라고도 한다."밖이 깜깜해서 할머니 혼자는 무서워."라고 하면 그제서야 낙담하며 포기를 한다.그게 반복되자 둘째는 묘책을 강구했는지 어느 날 내게 목소리를 낮춰 은밀히 말하기도 했다."이따가 할머니 갈 때 할아버지는 방에 숨어 있어."며칠 전 딸아이가 둘째와 나눈 이야기를 카톡으로 알려주었다.둘째 : 할아버지는 언제 와?딸 : 일요일에 와 ~ 와서 .. 2025. 4. 19.
꽃봉오리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청마 유치환의 시 「깃발」은 혹시 철쭉 꽃봉오리를 보고 떠올린 거 아닐까? 아파트 화단 가득 봉긋봉긋 솟아나 어느 한순간 일제히 입을 벌리며 '와아!' 소리 지를 것 같은······.봄기운이 세상의 모든 구석구석까지 들썩이는 날들이다.아래 배영옥 시인의 시도 '막바지 내리막으로 내려서기 전'이 아니라 거친 숨소리로 정상 직전의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꽃봉오리의 한순간이라고 읽고 싶어진다. 한순간 제 몸을 수축시켜 색이 짙어지는 것어느 순간 색이 진해진 것들은나머지 생을, 전심전력,순간에,집중했다는 것이다어느 지점까지 꽃은남은 향기를 꽃잎에 모아보고,마지막 안간힘으로 불타오르는 꽃의 둘레를 그린다색이 진해지면서 형태를 벗어나려는 순간,반짝화색이 도는 순간,세상에서 가장 지탱하기 .. 2025.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