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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7

'유다'의 이직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같이 음식을 나누면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 바로 나를 배반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을 가겠지만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그때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나서서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하고 묻자 예수께서 "그것은 네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오 26:20∼25) "신념? 직장을 구하는덴 불필요한 거 아닐까요? 아니면 .. 2024. 3. 22.
봉화산, 내 놀던 옛 동산 ♪우뚝 솟은 봉화산 봉 늠름한 기상과···♬ 초등학교 때 교가다. 봉화산은 학교 뒤쪽으로 가까이 있어 친근한 산이었다. 50여 년만에 봉화산에 올랐다. 옛 추억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걸을 편한 산길을 찾다 보니 가게 되었다. 아내는 재작년 산행을 하다 허리를 다친 이후 산엘 올라본 적이 없다. 이제 거의 회복이 되어 다시 등산을 하고 싶어져서라기보다는 매일 하는 산책을 가끔씩은 집 근처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고 싶기 때문이다. 봉화산의 "동행길"은 지하철에서 접근성도 나쁘지 않은 데다가 산 아래서부터 꼭대기까지 걷기에 편한 데크길로만 올라갈 수 있어 아내에게 최적의 산책길이자 등산로일 것 같았다. 아내가 연 이틀 모임에 나가고 나 혼자 사전 답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올라갈 때는 계단으로 이.. 2024. 3. 21.
귀성열차 80년대 나는 지방에서 근무하며 명절이면 서울로 올라오는 '역귀성'을 했다. 긴 시간을 이동하여 본가와 처가에 하룻밤씩을 자고 다시 같은 길을 내려와야 하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한 번은 일이 있어 명절에 서울로 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저녁이 되자 대부분 고향으로 떠나 몇 집만 불이 켜진 텅 빈 지방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는 적막함과 괴괴함이 가득했다. 귀성이 없는 3일의 휴가는 길고 여유로웠지만 동시에 우리 가족만 마치 절해고도에 고립되어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고속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들과 붐비는 기차역 풍경을 연신 보여주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이런저런 짐을 꾸려 바쁘게 오르내리는 명절의 시간에 번거롭고 고단한 이상의, 그렇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위로와 신명 같은, 무엇인가가 있다.. 2024. 2. 9.
눈이 온다 아침부터 대설주의보 문자가 반복해서 뜨더니 오후부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우성치듯 날리는 눈으로 삽시간에 창문이 자욱해졌다. "와 눈이다!" 아내와 소리쳤다. 첫눈엔, 특히 오늘처럼 함박눈일 땐 더욱 아이들처럼 되곤 한다. 어린 시절 초겨울에 접어들면 일삼아 첫눈을 기다렸다. 어느 날 저녁에 무심코 방문을 열었다가 마당에 하얗게 깔린 달빛을 첫눈으로 착각하여 소리를 지르는 통에 놀란 어른들의 지청구를 들은 적도 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첫눈을 기다렸던 기억이 오래 남은 이유는 그 일이 내게 아름다움의 시원(始原) 같은 의미여서가 아닐까? "창 넓은 카페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나 마시면 좋겠네." "바다가 보이면 더 좋겠지." "산이나 벌판을 건너다 보이는 카페도 괜찮을 것 같은데." 눈을 바라보며 .. 2021. 12. 18.
풀과 나무와 사람들 사이의 별 언제부턴가 이런저런 약을 먹게 되었다. 영양제도 있고 치료(현상유지?)제도 있다. 일시적인 약도 있고 기약 없이 오래도록 규칙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도 있다. 병원도 자주 가게 된다. 아직 종합병원까지는 아니고 동네 병원 수준이지만 내과에 치과에 진료 부위가 다양하다. 50대까지는 좀처럼 없던 일이다. 병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약봉투를 선물처럼 받게 된다. "우리 나이에 약은 식후에 먹는 디져트 같은 거야" 술자리에서 서로 먹는 약을 확인하다 친구의 말에 웃은 적이 있다. 엇그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임의 회원들과 영상으로 월례 회의를 했다. 회의 끝 무렵 누군가 나빠진 시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비슷한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미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도 .. 2020. 8. 27.
내가 읽은 쉬운 시 93 - 신경림의「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것이 어머니가 서른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 약방에 들러 소화제를 사고 떡집을 지나다가 잠깐 다리쉼을 하고 동향인 언덕바지 방앗간 주인과 고향 소식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엔 동태만을 파는 좌판 할머니한테 들른다. 그이 아들은 어머니의 손자와 친구여서 둘은 서로 아들 자랑 손자 자랑도 하고 험담도 하고 그러다보면 한나절이 가고, 동태 두어마리 사들고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 어머니의 하루는 저물었다. 강남에 사는 딸과 아들한테 한번 가는 일이 없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오가면서도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듣고 보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더 멀리 갈 일이 무엇이냐는 것일 텐데. 그 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먼,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그 고향 뒷산에 가서.. 2019. 3. 30.
내가 읽은 쉬운 시 37 - 김민준의「괜찮아」와 신경림의「갈대」 송년회 모임에서 친구가 책을 한권씩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근래에 읽은 책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책이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이전에도 모임이 있을 때 가끔씩 책을 나누어주곤 했다. 이번에 나누어준 책의 제목은 『계절에서 기다릴께』였다. 책은 삶과 사랑에 대한 단상을 산뜻한 발상과 감성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때론 기발하고 때론 애틋했다. 평소 친구의 따뜻한 품성과 닮아 보였다. 친구는 글속의 작고 예민한 표현들에 감동스러워 했다. 마른 살비듬 버석거리는 나이에 글 한 줄에 마음을 적실 줄 아는 소담스런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친구의 마음이 아직 순수하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솔직히 내가 직접 사서 볼 취향의 책은 아니었지만 친구의 정성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는 인연의 글이라는 생각에 하루에 조금씩 서너.. 2016.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