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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95

2003 캄보디아 여행기 11. - 따쁘롬 * 위 사진 : 2003년 대한항공 주최 여행 사진 공모전에서 내게 디지탈부문의 DIGI-KAL상을 받게 해준 사진이다. 나는 "세월"이란 제목을 붙여 응모했었다. 앙코르의 사원들은 한 서양인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무려 천년을 깊은 밀림 속에 묻혀있었다. 그 장구한 세월은 사원을 하나의 자연으로 동화시켜버렸다. 균열이 가고 넘어진 돌담과 기둥만 사원이 아니고 그 틈에서 솟아난 무화과만이 자연은 아니었다. 하늘과 땅과 나무와 갈라진 틈이 모두 사원이자 자연이고 신화이자 역사였다. 그 때문에 앙코르의 사원들은 복원도 하지 말고 물론 파괴도 하지 말고 다만 보존만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타프롬을 찾은 날 무너져내린 돌에 앉아 거대한 나무뿌리에 휘감긴 사원의 석조물을 보며 인간이 세운 거대한 건축뮬.. 2012. 4. 8.
2003 캄보디아 여행기 9 - 바욘 사원 * 위 사진 : 바욘사원이 있는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조각물 덜컹거리는 툭툭이(모또 뒤에 바퀴달린 의자를 부착한 것)의 뒷자리에서 흔들리며 앙코르톰의 정문인 사면석불을 통과하여 처음 바욘 BAYON 사원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강한 충격에 몸을 떨어야 했다. 아! 캄보디아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바욘이 회색의 돌탑에 수십 개나 새겨져 서있었다. 세월 속에 빛바랜 석조물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눈길을 주면 어느 순간 회색의 얼굴이 선명해져 오곤 했다. 거대한 얼굴들은 마치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원을 지을 당시 통치자의 얼굴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두툼한 입술과 거대하면서도 균형 잡힌 얼굴에서위엄과 순박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인도차이나를 호령하던 대제국 앙코르의 통치자... *아래.. 2012. 4. 7.
2003 캄보디아 여행기 7. - 앙코르 사원군1 * 위 사진 : 프놈펜에서 시엠리엡 갈 때 타고간 시엠리엡에어 비행기 앙코르 왓은 시엠리엡에 있는 한 사원의 이름이다. 동시에 그것은 시엠리엡의 주변의 방대한 지역에 걸쳐 흩어져있는 모든 사원을 지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앙코르 왓을 보러간다고 할 때 그것은 대체로 8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시엠리엡 지역에 세워진 엄청난 사원군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 된다. 이번 앙코르 왓 순례도 그 ‘대명사’ 방식으로 보기로 했다. 개개의 사원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전체를 하나의 앙코르왓으로 보기로 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개개의 세워진 시기나 세운 사람의 구분 따위는 무의미한 것으로 제쳐 두었다. 내가 그나마 앙코르 왓 순례를 위해 준비를 한 것은 시엠리엡의 숙소에 도착하여 2박3일동안 돌아보고자 .. 2012. 4. 7.
2003 캄보디아 여행기 6. - 또 하나의 킬링필드. * 위 사진 : 왕궁 앞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저 아이들의 세대에는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빌어 보았다. “캄보디아폭격 임무를 안고 날아갔으나 어디에도 군사 목표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장을 목표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도널드 도슨, B-52 부조종사- “캄보디아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베트콩을 공격했을 뿐이다” -헨리 키신져, 미 안보 고문 -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망하고 떠나자 미국은 경제원조라는 미명으로 베트남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1964년 8월의 통킹만 사건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에 나선다. 미국 대통령의 ‘엄숙한’ 발표에 따르면 “북베트남의 통킹만 밖 공해상을 순찰 중이던.. 2012. 4. 7.
2003 캄보디아 여행기 4. - "마지막 낙원" 프놈펜 *위 사진 : 왕궁의 낮과 밤. 여행안내서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에는 프놈펜의 하이라이트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1). 왕궁 내의 실버파고다 2). 왓프놈 3). 뚜얼슬랭 감옥 4). 국립박물관 5). 프놈펜의 나이트라이프 론리플래닛의 안내가 없었다 해도 프놈펜에 온 이방인 여행자가 선택할 곳은 대충 그런 곳이었다. 내가 프놈펜에서 돌아본 곳도 대충 비슷했다. *왓 프놈 WAT PHNOM 왓프놈은 내가 묵은 호텔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도착 뒷날 아침 일찍 일어나 프놈사원에 올라 이번 여행에 행운이 있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 보았다. 메콩 강물이 범람하여 떠내려온 불상을 뺀이라는 여인이 건져내 언덕 위에 모시고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작은 동산이지만 평지의 프놈펜에서는 가장 높.. 2012. 4. 6.
2003 캄보디아 여행기 3. - "과거를 묻지 마세요" *캄보디아의 돈 1000리엘 (0.25불) 뽀첸통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공항 택시는 고정 가격 7불이며 '모또'는 2불이었다. 여행짐을 가진 외국인 입국자들은 '모또'보다는 공항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해 보였다. 모또는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 택시를 말하는 것으로 캄보디아에서는 자전거를 개조한 씨끌로와 더불어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다. 특히 모또는 미터택시나 버스의 존재가 전무하거나 열악한 상황의 프놈펜에서 단거리를 이동하기에는 가장 편리하고 신속한 교통수단이었다. 어디든 그렇듯이 타기 전에 가격 흥정은 필수였다. 프놈펜 시내의 웬만한 거리는 0.5불(2000리엘)이면 갈 수 있었다. 프놈펜의 한 한국식당의 사장님이 먼저 1천 리엘을 제시하고 안되면 2천 리엘을 주라.. 2012. 4. 6.
2003 캄보디아 여행기 2. - 뽀첸통 국제공항에 내리며 * 캄보디아의 앙코르 맥주. 캄보디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천공항을 향해 강변도로를 달리는 직행버스 속에서 문득 자문하여 보았다. 프놈펜, 크메르루즈, 폴폿, 킬링필드, 론놀, 시하누크, 그리고 그 유명한 앙코르왓에, 구태여 더 들자면 몇 개의 캄보디아 회사와 캄보디아인 몇 명. 그것이 다였다. 그나마도 단어적인 의미 이상으로 아는 것이 없다.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수도라는 사실에서 한마디 더 붙일 것이 없고 한때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렸던 몇 명의 정치지도자 이름만 외워질 뿐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아니면 캄보디아의 역사에서 그들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거기에 70년대의 내전과 외전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간단한 사실과 그곳에 천 년의 역사를 지닌 거대한.. 2012. 4. 6.
2003 캄보디아 여행기 1. - 캄보디아로 90년대 내내 거의 매달 동남아로 출장을 갔으면서도 캄보디아는 늘 예외의 나라였다. 최빈국 대열의 국민소득과 내전과 쿠테타로 이어진 정정의 불안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이 방콕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음에도 비즈니스 대상지로서는 늘 관심 밖에 있는 나라였다. 업무출장의 핵심은 구매력의 존재 여부이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까지 주요 업무출장지였던 동남아 시장이 중국이나 로컬 업체들의 성장으로 나날이 줄어들면서 대체시장을 찾아야한다는 절박함이 생겨났지만 몇번인가 이메일과 전화통화를 주고 받은 것과 한두 번의 방문을 제외하면 나에게 캄보디아는 여전히 크게 고려할만한 업무의 대상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업무를 벗어나면 캄보디아는 늘 여행하고픈 곳이었다. 바로 고대도시 앙코르 때문이었다. 강성한 고.. 2012. 4. 6.
나이들어 가는 징조 천성이 원래 진득하지 못한 탓인지 사우나나 찜질방, 요즈음 유행하는 숯막 등 후덥지근하고 뜨뜻한 곳에는 별로 취미 없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뜨끈한 곳에서 '지지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찜질방 두어번에 이어 지난 설 연휴 끝에는 드디어 숯막까지 다녀왔다. 차라리 운동장을 열바퀴 도는 것이 낫지 습하고 더운 곳에 멍청히 앉아 ‘육수빼기’는 여전히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예전처럼 못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아내는 나이 들어가는 징조라고 했다. 그런 것도 같다. 숯의 열기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 그속에서 '장수만세'에 도움이 된다는 원적외선이 나온다지만 그런 것은 몰라도 참숯에 구워먹는 삼겹살 맛은 최고였다. 2006.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