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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7

내가 읽은 쉬운 시 135 - 밥에 관한 시 네 편 "밥의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학창 시절 농활이나 모임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 혼자 가질 수 없듯이 밥은 나눠먹는 것!" *위 사진 : 김지하의 책, 『밥』 중에서 햇볕과 바람과 비에 노동을 머금은 밥은 하늘이고 영성(靈星)이다. 또한 밥은 똥이 되어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생명 순환의 고리를 완결한다. 식사(食事)는 '식사(式事)'가 아니라 '하늘이 하늘을 먹는(以天食天)' 축제이며 공동체적인 나눔의 의미가 함께 한다. 물론 '혼밥'도 그 자체로 거룩한 행위임에는 틀립없지만 아무래도 좀 쓸쓸해 보인다. 시인 이재무는 「길 위의 식사」란 시에서 밥상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따뜻한 밥이 아닌 사료를 삼키 듯 허겁지겁 먹는 밥으로 각박해진 우리의 삶을 표현했다. 사발에 담긴 둥글고.. 2019. 8. 22.
내가 읽은 쉬운 시 112 - "로드킬"에 관한 두 편의 시 갑자기 앞차가 급정거했다. 박을 뻔했다. 뒷좌석에서 자던 아이가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습관화된 적개심이 욕이 되어 튀어나왔다. 앞차 바로 앞에서 한 할머니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 복판이었다. 멈춰 선 차도 행인도 놀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좁고 구불구불하고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걷다 보니 갑자기 도로와 차들이 생긴 걸음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도저히 빨라지지 않는 걸음이었다. 죽음이 여러 번 과속으로 비껴간 걸음이었다. 그보다 더한 죽음도 숱하게 비껴간 걸음이었다. 속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본 걸음이었다. 이제는 죽음도 어쩌지 못하는 걸음이었다. 느린 걸음이 인도에 닿기도 전에 앞차가 튀어나갔다. 동시에 뒤에 늘어선 차들이 사납게 빵빵 거렸다. - 김기택의 시, 「무단 횡단」-.. 2019. 5. 30.
내가 읽은 쉬운 시 73 - 이재무의「한강」 7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한 후 어느 날 우리 과에 한 '인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단과대 전체 차석(次席)이며 계열 수석 입학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보다 공부 잘하는 '놈'들이야 늘 있어 왔기에 나는 그가 누구인지 특별히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인물'의 위력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화학 실험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었다. 노느라 바빠 숙제를 안 해 간 나는 옆에 있는 아무에게나 리포트 좀 빌려달라고 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몇몇을 빼곤 아직 이름도 잘 모를 때였다. 적당히 보고 베낄 속셈이었다. "리포트 해왔으면 잠시 빌려줄래?" 말을 건네자 상대방이 머뭇거렸다. "빌려주긴 하겠는데 ······ 베끼기가 좀······ 뭐 할 거 같.. 2017. 11. 28.
내가 읽은 쉬운 시 72 - 이재무의「상갓집에는 신발들이 많다」 *위 사진은 2012년 미국 LA에서 찍은 장례식 모습이다. 갑작스런 대학 친구의 부음. 부모님 대의 문상과는 다른 분위기. 친구의 단정한 영정을 둘러싼 화사한 꽃 단장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황망함이 먼저였고 살얼음 같은 애잔함과 얼마간의 두려움이 뒤를 이었다. 친구들은 여기저기서 놀란 눈을 닫지 않은 채 속속 모여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춰 술잔과 망자와의 추억과 문득 가까이 온 듯한 죽음에 대해 두서없는 이야기 나누었다. 불멸의 우주는 그 안에 존재하는 숱한 존재들의 필멸로 이루어진다는 한 때 명료한 아침 종소리 같던 그 말은 별 위로도 되지 않았고 그럴 듯하지도 않았다. 상갓집에는 신발들이 많다 경향 각처에서 꾸역꾸역 모여든 문수 다른 이력들 갖가지 체위로 엇섞여 팔베개하고 있거나 후배위.. 2017. 10. 31.
부재에 대하여 아내와 결혼한 이래 가장 오래 떨어져 지낸다. 중간에 잠깐 본 적이 있지만 어언 6개월 가까이 접어든다. 혼자 있는 시간은 오래될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점점 어색해져갈 뿐이다. 아내와 있으면 작아만 보이던 우리 아파트가 혼자 있으니 휑하니 무척 커보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방까지 가는 길이 멀다. 주말이면 아내와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다니느라 늘 미끈하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젠 하루가 서른시간이라도 되는 양, 흔해서 주체하기 힘들다. 시간이 꾸역꾸역 다가오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새로운 풍경을 대할 때마다 아내를 세우고 찍은 사진들이 자주 사진기의 저장용량을 넘어 부지런히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는데,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은 한번도 옮길 필요가 없었다. 잠이 오지.. 2014. 10. 8.
밥을 먹으며 시를 읽는데 아내가 한국에 가기 전 냉장고 냉동실에 덥혀 먹기 좋게 나누어 얼려놓은 국을 해동시켜 저녁밥을 먹으며 시를 읽는데 이런 시가 눈에 들어왔다.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 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감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 이재무의 시, "국수" - 마지막 소절에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시인이 부부싸움이라도 했을까? 아내가 화가 났던가 보다. 시인의 아내처럼 화가 나서 간 것은 아니지만 불현듯 나도 한국에 있는 .. 2014. 10. 8.
봄이 오네요 휴일입니다. 한국처럼 추은 겨울은 아니지만 이곳 샌디에고도 지난 몇 달과는 구별되는 시간이 왔습니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햇살이 너무도 고와 읽던 책을 덮어두고 잠시 집 주변을 걸어보았습니다. 어느 새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쯤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꽃입니다. 누구에게 묻던 봄이 다하기 전에 올해는 반드시 그 꽃이름을 알아두어야겠습니다. 햇살 가지에 와서 클릭, 클릭할 때마다 수피 뚫고 나온 연초록 이파리들의 부리 콕, 콕, 콕 허공 쪼아대고 햇살 꽃나무에게로 와서 자판 두들겨대니 복제되는 꽃말, 꽃 문장 천방지축 날뛰는 방향(芳香) 자글자글 몸속에서 끓는다 - 이재무의 시, 「클릭」 - * 작성 일자 : 2012.3 2013.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