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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33

제주 함덕 27 밤 사이 비가 내려 길이 젖어 있었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졌지만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아내가 잠에서 깰 때까지 강풀의 만화 『마녀』를 읽었다. 모든 사랑은 불안하고 위험하고 때론 치명적이다. 그래도 사랑은 그런 모든 것에 맞서게 한다. 아니 끌어안게 한다. "누구나 다 그래. 사랑은 다 불안해. 우리는 조금 다를 뿐이야." 사랑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무의미해지는 우연이고 필연이고 운명이다. 그런 이야기를 긴장과 감동 속에 풀어가는 작가의 솜씨가 조금 늦게 잠에서 깨어나 영문을 모르는 아내를 토닥거려주게 했다. 며칠 전 제주 시내 아베베 빵집에서 사와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빵과 미숫가루로 아침을 했다. 오늘 점심은 '음식 복습' 두 번째로 산방식당의 국수다. 지난번과 같이 아내는 비빔국수를.. 2022. 11. 15.
제주 함덕 26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보다 날씨가 좋았다. 한라산 쪽으로 두꺼운 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그건 자주 있는 일이라 그 구름이 비를 몰고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잠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밖을 보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탁한 구름에 가려졌고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어졌다. 아내와 나는 거실 문을 열어놓고 빗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비가 오는 날엔 '달달이'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한다. 나는 비장의 무기인양 아껴두었던 믹스커피를 타고 음악을 듣기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의 볼륨을 올렸다. 비와 관련된 노래와 음악은 유투브에 흔했다. 이런 날에는 수제비가 제격인데 밀가루가 없었다. 궂은 날씨에 사러가기도 뭐해서 궁리 끝에 미숫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보았다. 밀가루에 비해 탄.. 2022. 11. 13.
제주 함덕 25 아침마다 자리에 엎드려 만화 읽는 재미에 빠졌다. 제주살이를 마칠 때까지 계속될 듯하다.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는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지하 단칸방에서 자취하는 가난한 대학생 네 명과 사슴 한 마리(?)의 이야기다. 만화는 가난을 미화하지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죄악시하지도 않고 그냥 가난하게 사는 청춘들의 '리얼궁상'을 보여준다. 비루할 때도 허황된 꿈을 꿀 때도 보는 사람은 웃음이 나온다. 나도 비슷한 젊은 시절이 있었던 것도 같다. 어제 치맥 모임 하고 남은 떡볶이로 '아점'을 했다. 오후엔 아내와 함께 올레길 19코스인 조천만세동산에서 (육지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관곶을 지나 신흥리까지 걸었다. 나 혼자 아침 산책으로 이미 파악한 길이어서 아내를 안내하기가 수월했다. 바람은 불었지만 푸근한.. 2022. 11. 12.
제주 함덕 24 밤사이 제주에 온 이래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길이 젖어 있고 베란다에도 비가 들이친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날이 새면서는 비가 더 오지 않았고 하늘이 걷히며 햇볕이 반짝 돋아났다. 올해 제주는 10월에 11일부터 31일까지 21일간 계속해서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는1973년 이후 10월 연속 무강수일수 역대 2위 수준이라고 한다. 11월 들어서도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서 현재 한 달 가까이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여행하기는 더없이 좋았다. 마스크를 하고 돌아다녔더니 뺨에 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길어진 가을 가뭄으로 힘들어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후에 아내의 친구와 옆방 지인을 초대해서 치맥을 하기로 해서 오늘은 12시까지만 빈둥거리기로 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 2022. 11. 11.
제주 함덕 23 베란다에 나가 한라산 사진을 찍고 들어와 책을 읽다가 아침산책을 빼먹었다. 어제 "아베베"에서 사 온 크림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도 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 계속 책을 읽었다. 아내의 허리를 고려하여 오늘은 멀리 가지 않기로 했다. 점심을 "싱싱촘맛집"에서 하기 위해 함덕해수욕장에서 버스를 탔다. 세 정거장을 이동하여 함덕비석거리 정거장에서 내려 걸어갔다. 회덮밥과 한치물회를 먹었다. 한치는 제철이 아니라 냉동 한치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래서그런지 회덮밥이 더 입맛에 맛았다. 식사를 하고 앞갯물에서 신흥리까지 걸었다. 바다에서 살짝 벗어나 대부분 마을과 밭 사이를 걷는 길이었다. 도중에 양파를 심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경기도에서 내려와 12년째 제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부부가 함께 여행을 .. 2022. 11. 11.
제주 함덕 22 아침 산책 대신 엎드려 강풀의 만화 『조명가게』를 읽었다. 세상에 못다 한 사랑과 책임과 반성을 다하기 위해 떠도는 영혼들의 이야기가 너무 작위적이긴 했지만 따뜻해서 좋았다. 버스를 타고 제주 시내로 갔다. 김만덕기념관을 가기 위해서였다. 김만덕기념관은 'MUST'의 목표가 아니라 단순히 걷기의 반환점이었다. 동문시장 근처에서 내려 걷다가 빵집 "아베베"를 다시 보게 되었다. 며칠 전 간장게장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맞은편 아베베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이 시선을 끌었다. 뭘까 검색해 보니 유명 빵집이었다. 나오는 사람들 손엔 모두 빵을 담은 커다란 봉투 하나씩이 들려 있었다.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매장 내엔 테이블도 없고 오로지 포장 판매만 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빵들이 이곳에서.. 2022. 11. 10.
제주 함덕 21 새벽에 숙소를 나섰다. 함덕 해변을 통해 서우봉으로 향했다. 서우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출발을 한 것이다. 오후에 아내와 함께 서우봉을 걷기 위해 사전답사를 겸한 아침 산책이기도 했다. 서우봉(犀牛峰)은 올레길 19코스 '조천-김녕 올레'의 일부이다. 올레길을 통해 함덕 동편의 북촌리까지 가서 돌아올 때는 버스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서우봉에 오르면서는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함덕 해안의 모습이 높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명 속의 돌아본 아침 바다는 특별히 차분했고 멀리 한라산은 더욱 의젓한 것 같았다. 올레길은 서우봉 정상에 오르지 않고 에돌아 지난다. 북촌리 바다가 눈에 들어오자 이미 바다 위로 솟아 오른 아침 해가 보였다. 긴장과 대립이 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계절을 만드는 자연.. 2022. 11. 10.
제주 함덕 20 아침 함덕 해변을 걸었다. 기온은 다시 온화해지고 바람도 한결 잦아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드랑 빵집에서 어니언 베이글을 사다가 버섯수프와 함께 먹었다. 제주살이가 10일 정도 남았으므로 이제부턴 냉장고 속의 식재료를 줄여나가야 한다. 점심엔 며칠 전 아내의 친구가 사다준 갈치를 꺼냈다. 재료가 워낙 싱싱한 터라 그냥 프라이팬에 구웠을 뿐인데도 여느 갈치구이 전문식당의 맛에 뒤지지 않았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두암은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시절에 제주 인증샷을 찍는 장소였다. 신혼부부의 집들이를 갈 때마다 벽에 걸린 용두암 배경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나는 아내에게 빚처럼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아내와 용두암을 찾았을 때.. 2022. 11. 9.
제주 함덕 19 제주에 와서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아침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날이 더 추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워서 조천읍도서관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읽는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껏 게으른 자세로 있다가 옆방의 지인이 준 감자를 삶아 아침으로 했다. 나는 간장게장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내는 매우 좋아한다. 검색을 해서 간장게장을 먹으러 갔다. 며칠 전 아내가 평소에는 외면하던 해장국을 다분히 나를 위해 먹으러 나선 것과 같은 이유다. 부창부수(夫唱婦隨)와 부창부수(婦唱夫隨)의 공존이다. "제주동문 간장게장"의 게장은 적절한 염도와 달작지근한 게살로 그런 나를 영락없는 밥도둑으로 만들어 놓았다. 초로의 주인아주머니 혼자서 운영하여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도 좋았다. 식당을 나와 관덕정으로 가는 길에 동문시장.. 2022.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