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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35

제주 함덕 20 아침 함덕 해변을 걸었다. 기온은 다시 온화해지고 바람도 한결 잦아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드랑 빵집에서 어니언 베이글을 사다가 버섯수프와 함께 먹었다. 제주살이가 10일 정도 남았으므로 이제부턴 냉장고 속의 식재료를 줄여나가야 한다. 점심엔 며칠 전 아내의 친구가 사다준 갈치를 꺼냈다. 재료가 워낙 싱싱한 터라 그냥 프라이팬에 구웠을 뿐인데도 여느 갈치구이 전문식당의 맛에 뒤지지 않았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두암은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시절에 제주 인증샷을 찍는 장소였다. 신혼부부의 집들이를 갈 때마다 벽에 걸린 용두암 배경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나는 아내에게 빚처럼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아내와 용두암을 찾았을 때.. 2022. 11. 9.
제주 함덕 19 제주에 와서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아침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날이 더 추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워서 조천읍도서관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읽는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껏 게으른 자세로 있다가 옆방의 지인이 준 감자를 삶아 아침으로 했다. 나는 간장게장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내는 매우 좋아한다. 검색을 해서 간장게장을 먹으러 갔다. 며칠 전 아내가 평소에는 외면하던 해장국을 다분히 나를 위해 먹으러 나선 것과 같은 이유다. 부창부수(夫唱婦隨)와 부창부수(婦唱夫隨)의 공존이다. "제주동문 간장게장"의 게장은 적절한 염도와 달작지근한 게살로 그런 나를 영락없는 밥도둑으로 만들어 놓았다. 초로의 주인아주머니 혼자서 운영하여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도 좋았다. 식당을 나와 관덕정으로 가는 길에 동문시장.. 2022. 11. 9.
제주 함덕 18 간밤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여느 때처럼 반바지 운동복 차림으로 아침 산책을 나가니 종아리에 감기는 공기가 서늘했다. 함덕 해변의 모래에는 밤새 강한 바람에 지나간 흔적이 잔물결처럼 남아 있었다. 이 정도라면 한 겨울에는 바닷가 집과 상가로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이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해변 전체를 비닐로 덮는 월동 준비가 이해가 되었다. 제주 시내에 나가 점심을 했다. 돌하르방식당에서 각재기국으로 먹었다. 며칠 전 숙소 근처 함덕촐래식당에서 처음 먹은 각재기국은 아내와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연하게 푼 된장과 초록의 배춧잎이 어우러진 각재기탕은 통영의 봄철 음식 도다리쑥국에서 쑥 향기를 뺀 맛처럼 슴슴하고 은근했다. 식탁 위에는 다진 마늘과 매운 양념장이 있었지만 아내와 나는 .. 2022. 11. 7.
제주 함덕 17 전형적인 가을 날씨. 티끌 하나 없는 하늘 아래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제 아내의 지인이 같은 숙소 옆방에 체크인을 했다. 함덕이 처음인 지인을 위해 아침에 빵집 "오드랑"에서 마농바게트를 사 오며 우리도 같은 것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로 인해 한동리에서 언덕과 들길을 따라 행원포구까지 걷는 것으로 평소보다 조금 늦은 아침 산책을 했다. 길은 밭담을 끼고 휘어지며 오르내렸다. 마치 오래간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따뜻한 감성이 샘솟는 길이었다. 그렇듯 걷는 일은 숨어있는 내면의 길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길옆 표지판에 박노해의 글이 쓰여 있었다.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내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세화포구 근처 연미정에서 전복밥을 먹었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식당이고 음식이었다.. 2022. 11. 5.
제주 함덕 16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직 옅게 남아 있던 아침 안개는 마을길을 따라 월정리 해변까지 가는 동안 말끔히 걷혔다. 그리고 시리게 푸른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텅 빈 해변엔 장난을 치며 오르내리는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파도소리와 함께 실려왔다. 지나가며 눈이 마주치자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말을 건네 왔다.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왔을까 짐작하며 물어보니 말레이시아에 왔단다. 그들은 초면의 이국의 낯선 남자 앞에서도 전혀 쑥스러워움 없이 다양한 포즈로 사랑을 표현했다. 나도 함께 즐거워 여기저기 좋은 배경을 추천까지 해가며 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내와 연애를 하던 젊은 시절 그들처럼 공개적인 장소에서 적극적인 사랑 표현을 해보진 못했지만 마음은 그 .. 2022. 11. 4.
제주 함덕 15 삼양해수욕장에서 한 아침 산책. 철 지난 해변은 바람과 파도소리만 잔잔할 뿐 조용했다. 함덕이나 김녕해수욕장과 달리 삼양 해수욕장은 해변이 검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에서 검은 바위와 돌이 널린 바닷가는 자주 보았지만 검은 모래의 해변은 처음이었다. 이곳이 유일한가? 모르겠다. 여름철엔 모래찜질로 유명하다고 한다. 삼양해수욕장도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해변을 천막으로 덮는 월동 준비가 진행 중이었다. 아침은 콘수프와 제철인 단감으로 했다. 점심은 식당 "골목"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아내는 해장국이나 내장탕, 곰탕 등을 대체적으로 싫어하는 편이지만 나를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해장국을 함께 먹어주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옛말에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이 있다. "골목" 옆에 있는 커피점 .. 2022. 11. 2.
제주 함덕 14 남흘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김녕서포구를 거쳐 김녕해수욕장까지 걸었다. 투명하고 서늘한 물빛의 바다에서 싱싱한 아침 기운이 바람에 실려 전해 왔다. 힘을 내서 걷자! 아침에 어울리는 말이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 정현종, 「아침」 - 용천수인 청굴물은 김녕 해안의여러 용천수 중에서도 유난히 차갑다고 한다.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 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2-3일씩 묵어가곤 했다고 한다. 김녕 성세기알 바닷가에 옛 민간 등대 도대불이 있다. 도대불은 제주 해안가 마을의 포구마다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바다에 생을 기댄 사람들로선 배들의 안전한 귀환이 제일 중요했을 .. 2022. 11. 1.
제주 함덕 13 아침 산책으로 올레길 19코스 북촌리에서 동복리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올레 패스포트에는 19코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바다만도 아니고 숲만도 아니다 바다, 오름, 곶자왈 마을, 밭··· 제주의 모든 것이 이 길안에 있다. 밭에서 물빛 고운 바다로, 바다에서 솔향기 가득한 숲으로, 숲에서 정겨운 마을로 이어지는 길의 전환. 지루할 틈이 없다." 오늘 길은 '솔향기 가득한 숲으로, 숲에서 다시 물빛 고운 바다로'였다. 동복리 바다로 내려오는 길에 핸드폰이 울려 꺼내보니 제주도에서 보낸 안전 안내 문자다. "이태원사고 관련 사고 수습과 전국적 애도 분위기 상황입니다. 각종 축제와 행사, 특히 할로윈 행사를 준비 또는 참여하는 분은 안전에 각별한 유의 바랍니다." 이태원사고? 할로윈 행사에 무슨 .. 2022. 10. 31.
제주 함덕 12 아침에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는데 자리에서 미적거리다가 하루 거르기로 했다. "어제 기념일 준비로 피곤했나?" 아내가 웃었다. 아침 식사는 어제 남은 샐러드에 달걀 프라이를 더해서 먹었다. 점심 무렵 함덕해수욕장에서 아내와 201번 버스를 탔다. 조천리 정거장에 내려 해변의 올레길 18코스에 합류를 했다. 바닷가 마을 곳곳에 용천수가 있었다. 용천수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식수는 물론 빨래물과 목욕물을 얻을 수 있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 조천지역에는 30개가 넘는 용천수가 남아 있다고 한다. 용천수 탐방길 안내도에는 23곳의 용천수가 표기되어 있다. 궷물(궤물), 절간물, 수거물, 수룩물, 앞빌레, 알물.. 2022.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