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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35

제주 함덕 11(결혼38주년) 아침에 숙소 주변, 해변이 아닌 중산간 쪽으로 걸어보았다. 평범한 마을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귤밭을 만났다. 사진을 찍다가 귤 수확을 준비하고 있는 초로의 사내와 말을 트게 되었다. 이제껏 커다란 귤밭은 서귀포 일대에만 있는 걸로 생각했다는 나의 말에 그가 말했다. "빌레는 제주도 말로 돌인데 빌레 위의 흙 층이 얇아서 조천의 귤이 서귀포 귤보다 당도가 높아요." 내게 물론 그 말의 사실 여부를 파악할 지식은 없다. 하지만 그가 맛보라고 건네준 귤은 적어도 하나로마트에서 사다 먹은 귤보다는 맛이 있었다. 그는 극조생의 귤이라 농협에 납품하기 위해 수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3일 정도는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귤밭 가운데 있으면서도 또다시 돌담에 둘러싸인 무덤이 편안해 보였다. 오늘.. 2022. 10. 29.
제주 함덕 10 막걸리 빛 하늘. 우중충해 보이지만 그래도 바람이 없어 날씨는 온화했다. 오늘 아침 산책은 버스로 세 정거장 떨어진 북촌포구 일대를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코스를 잡았다. 역시 올레길 19코스의 한 부분이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었다. 걸은 순서대로 사진을 올려본다.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히는 등명대(燈明臺)는 마을 사람들이 1915년에 세웠다. 처음에는 솔칵(관솔)으로 불을 켜다가 나중에는 석유등으로 바꾸었다. 원시적인 등대겠다. 가릿당(구짓머루당)은 북촌마을의 신을 모신 신당(神堂)이다. 이곳의 신들은 북촌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 호적과 피부병, 육아 해녀 어선 등을 관장한다. 이틀 전 다녀온 너븐숭이 4·3기념관이 오늘 산책의 종착 지점이었.. 2022. 10. 28.
제주 함덕 9 오늘부터 아침에 숙소에서 가까운 올레길을 조금씩 걷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6개 정거장을 이동하여 조천만세동산에서부터 올레길 19코스를 시작했다. 접근성과 난이도를 보아가며 수월한 곳은 아내와도 걸을 생각이다. 오늘은 만세동산에서 함덕해수욕장까지 대략 7km를 걸었다. 제주항일기념관을 벗어나자 제주의 전형적인 돌담밭이 나온다. 돌담에 둘러싸인 무덤도 있다. 제주에선 삶도 죽음도 돌담 속인 것 같다. 바닷가 불턱도 돌담을 쌓아 만든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분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을 하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 요령, 어장의 위치 파악 등 물질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전수받는 공간이다. 아래 사진 속 불턱은 신흥리에 있는 고남불턱이다. 현재는 해안마을마다 현.. 2022. 10. 27.
제주 함덕 8 오늘 아침 산책은 서우봉 정상(109.5m)으로 잡았다. 이번 여행을 마치기 전에 아내와 함께 오를 수 있기를 바라는 곳이라 사전답사의 의미도 있었다. 서우봉을 향해 오를수록 눈에 들어오는 함덕의 바다와 해변, 하늘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자못 장쾌하여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침식사를 어제처럼 찐밤과 우유로 했다. 찐밤을 두 끼 연속 먹었으니 나머진 냉동시켜놓고 내일부턴 다른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날이 쌀쌀해져서 그런지 오늘은 사랑의 인사(엘가)나 부베의 연인,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같은 달달한 음악을 들었다. 점심은 함덕 서쪽에 있는 존맛식당에서 나는 문어차돌짬뽕을 아내는 문어차돌냉파스타를 먹었다. 존맛식당의 '존맛'은 젊은 세대들이 사용한다는 '욕 나올 정도로(X나 ) 맛있다 '의 줄.. 2022. 10. 26.
제주 함덕 7 나 홀로 매일 하는 아침산책. 동네 골목길을 걸어서 함덕 서쪽 바닷가까지. 바람은 어제보다 세찼지만 냉기가 실려있지는 않았다. 바다는 거세게 출렁였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침식사는 간밤에 쪄 두었던 밤으로 했다. 그리고 아내와 커피와 음악, 책으로 오전을 보냈다. 오늘은 아내가 사고를 당한 지 2개월 10일 만에, 드디어, 마침내, 대중교통을 타보는 날이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조천우체국까지 9개 정거장 이동. 버스가 달리면서 터덜거리는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결과는 오케이. 조천우체국 근처 백리향에서 고등어구이와 갈치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덤으로 나왔다. 요샛말로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었다. 물론 맛도 좋았다. 그득해진 배 때문에 뒤뚱거리며 바닷가 조천진성 위에 있는 정자.. 2022. 10. 25.
제주 함덕 6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영산이었다. 영산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하여 영산은 어렴풋이 그 있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영산은 밤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 달빛 속에 또는 별빛 속에 거므스레 그 모습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 그 모양이 어떠하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영산이 불현듯 보고 싶어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더니 이상하게도 영산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미 낯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 김광규, 「영산(靈山)」- 구름 속에 숨은 제주의 영산 한라산을 바라보다 떠오른 시. 세월의 구름 .. 2022. 10. 24.
제주 함덕 5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의 소설 제목처럼 아침에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다. 한라산이 있던 자리는 구름에 가려 마치 지평선이 있는 듯했다. 오늘은 아침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미숫가루와 달걀프라이로 아침을 먹고 MLB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경기를 보았다. 샌디에고 파드레즈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3차전이었다. 우리나라 김하성 선수가 샌디에고의 1번 타자로 뛰었지만, 김하성 선수가 없었더라도 아내와 나는 샌디에고를 응원했을 것이다. 7년 넘게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야구는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다. 미국에 사는 동안 샌디에고의 홈구장 펫코파크를 여러 번 갔었다. 미국의 다른 지역을 여행을 할 때마다 그곳의 야구장을 방문하는 것을 계획에 꼭 넣었다. 오늘 샌디에고는 져서 시리즈 통산 1 : .. 2022. 10. 23.
제주 함덕 4 아침 한라산 위ㄹ 흰 구름이 몰려들어 있었다. 어제까지 쌀쌀하던 기온이 다시 올라가 푸근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가을 본연의 날씨로 돌아온 것 같았다. 오늘은 해변 반대쪽으로 산책을 했다. 일주도로를 기준으로 해변 쪽은 식당과 카페 같은 상업적인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데 반해 반대쪽은 제주인들이 사는 주거시설이 많았다. 산책에서 돌아와 하릴 없이 음악을 들으며 빈둥거렸다.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아 간편식으로 아침도 먹지 않았다. 아내도 그렇다고 했다. 점심 무렵에 오드랑 베이커리의 빵으로 아침 겸 점심을 했다. 빵을 사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아내의 운동도 할 겸 직접 가서 먹었다. 숙소 주변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한가로웠다. 아마 도심에서 벗어나 있고 유명 관광지가 아니기 때.. 2022. 10. 22.
제주 함덕 3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에 나가 한라산 안부를(?) 묻기로 했다. 한라산은 오늘도 어제처럼 몸 전체로 밤새 안녕함을 전해주었다.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며 다시 오드랑 베이커리에 들렸다. 어제 마농바게트를 먹었다고 했더니 직원은 인절미브레드를 추천해 주었다. 아내는 단맛이 너무 강하다며 어제의 마농바게트를 지지했다. 점심은 산책길에 눈여겨봐둔 제주산방식당. 오래전부터 모슬포항 부근에서 이름을 알리더니 이제는 제주 곳곳에 지점을 연 모양이다. 함덕점은 올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아내는 비빔면, 나는 고기국수를 만두 두 개가 같이 나오는 세트로 주문했다. 예상대로 아내는 밀면을 좋아했다. 젊은 직원의 경쾌한 목소리도 맛을 더했다. 식당 맞은편에 "만춘서점"이란 작은 책방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2022.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