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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363

'동키' 돌아오다 인대가 늘어난 탓에 한달간이나 하고 다니던 깁스를 푼 지 채 며칠이 되지 않아 의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딸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귀국하는 날 아침, 아내와 인천공항에서 파리발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비행기는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도착했다. '지연'이란 전광판의 글씨가 '착륙'-'도착'으로 바뀐지 한참이 되어서도 딸아이는 출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결정적인 순간에 출몰하는 '정의의 사도'를 기다리 듯 아내와 나는 출구의 문이 열릴 때마다 긴장을 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딸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딸아이는 함박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아내와 내가 각오(?) 하고 있던 딸아이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2012. 9. 18.
우유는 전자렌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조카아이가 어렸을 적에 “우유는 어디에서 나오지?” 하는 물음에 젖소라는 대답대신에 “전자렌지”라고 답하는 통에 온 식구가 웃은 적이 있다. 매일 아침 제 엄마가 전자렌지에서 데워주는 우유를 보며 아이는 우유는 언제든 전자렌지 문을 열면 저절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지난 2개월 동안 아내는 몸이 아팠다. 날마다 병원을 오가며 진찰을 받고 약을 먹으며 고통을 이겨내는 아내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조카아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책망하며 반성하게 되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김이 나는 맛난 찌개와 반찬의 저녁밥이 ‘늘’ 준비되어있었고, 식사를 마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깎아져 나왔다. 옷장 속에는 몇 벌의 와이셔츠가 잘 다려져 가지런히 걸려.. 2012. 9. 18.
아침가리 - 영혼에 닿아 있는 공간 일년에 최소한 네 번씩은 강원도 인제의 아침가리골을 찾는 친구가 있다. 그에게 왜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많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의당 그래야 하는 것이기에 대답하기 힘든 법이다. 그에게 아침가리골은 단순히 숲이나 계곡이라는 트레킹의 대상지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 닿아 있는 순결한 영혼처럼 보인다. 4월 말 그와 함께 아침가리골을 걸었다. 나로서는 2년 전 진동리에서 아침가리분교까지 걸어본 이래 두 번째이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 반대의 방향을 잡았다. 살기 불편한 오지였기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오래 전에 집을 비우고 떠났지만 덕분에 아침가리골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비할 곳이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2012. 9. 18.
사월에서 오월로 *2006년 5월에 쓴 글 입니다. 봄의 번성을 위해 싹틔운 너는 나에게 개화하는 일을 물려주었다 아는 사람은 안다 이 세상 떠도는 마음들이 한 마리 나비되어 앉을 곳 찾는데 인적만 남은 텅빈 한길에서 내가 왜 부르르 부르르 낙화하여 몸떨었는가 남도에서 꽃샘바람에 흔들리던 잎새에 보이지 않는 신음소리가 날 때마다 피같이 새붉은 꽃송이가 벙글어 우리는 인간의 크고 곧은 목소리를 들었다 갖가지 꽃들과 함께 꽃가루 나눠 살려고 향기 내어 나비떼 부르기도 했지만 너와 나는 씨앗을 맺지 못했다 이 봄을 아는 사람은 이 암유도 안다 여름의 눈부신 녹음을 위해 우리는 못 다 핀 꽃술로 남아 있다 - 하종오의 시, "사월에서 오월로"- 봄의 계곡에서 만난 꽃봉오리같은 개구리알과 올망졸망 콩알만한 올챙이들. 생각할수록 .. 2012. 9. 12.
옛날에 금잔디1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심호택의 시, "그만큼 행복한 날이" - 2012. 8. 24.
영화 <<두 개의 문>>과 <<미드나잇인파리>> 지난 초여름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첫 번째 영화 은 2009년 1월에 발생한 ‘용산참사’에 대한 기록영화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 비극에 대한 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대신 (이 영화와는 직접적인 상관 없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로 현실과 영화를 보는 시각을 조정해 본다. 임꺽정은 비범한 무예와 담력을 지닌 ‘강자’의 초상으로 우리들에게 남아 있다. (···) 그러나 그는 실상 약자(弱者)이다. 기름진 들판에 살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백정의 자식이었을 뿐이다. (···) 물론 임꺽정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강자’의 면모로 읽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이미지를 입히는 주류이데올로기도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최소한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2012. 8. 16.
이제 죽은 먹입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달걀죽과 버섯죽 오래 전 아내의 맥을 짚은 한의사 아저씨가 "부인에게 죽도 안 먹이십니까?" 하는 막말을 들이댔다. 아내의 기력이 약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 나는 아내의 약한 기력이 나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 같아 마음이 뜨끔했다. 몇달 전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죽 싫어하잖아?" "아니야 나 죽 좋아해." 30년을 같이 살고도 아내의 취향도 몰랐던 걸 보니 내가 무심하긴 무심한 모양이다. 사죄하는 의미로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마다 죽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인터넷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죽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는 아예 죽에 관한 책을 사왔다. 이제까지 만든 죽 중에 아내는 달걀죽을 제일 좋아했다. "한의사아저씨, 저 아내에게 죽은 먹입니다.. 2012. 8. 11.
한국 축구의 놀라운 승리를 기원합니다! 한국 시간으로 내일 새벽, 이곳 샌디에고 시간으론 내일 점심 무렵입니다. 축구에서 브라질을 이긴다는 것은 "양궁에서 한국 여자대표팀을 꺾는 것, 사이클에서 영국을 넘어서는 것, 수영에서 펠프스보다 더 빠르게 헤엄치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한 평론가가 말했습니다만, 흔히 말하듯 공은 둥근 것이므로 어디로든 구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미 영국전 승리라는 대단한 성취를 이루느라 다리에 쥐나도록 뛴 선수들이기에 또 한번의 악전고투를 주문하기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남은 힘을 짜내어 모두 쏟아부어 주기를... 아울러 멕시코 팀의 승리도 더불어 기원합니다. 원래부터 전 무조건 일본 반대편 팬이긴합니다만 이번에는 특히 같이 일하는 이곳 멕시칸 동료들을 위해서 입니다. 한국과 멕시코 결승에서 만나고 (솔직히 그렇게만 .. 2012. 8. 7.
"그녀에겐 최선의 시대" 이래도? 길거리에서 머리에 가위 대고 미니스커트엔 잣대를 들이대는 데도? 새마을 노래와 군가를 빼곤 모조리 방송금지를 시키는 데도? (개그콘서트 하극상 버젼) 에라이-! 2012.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