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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360

달리기 세상에 유쾌한 일 중의 하나가 강변을 달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달리기를 굉장히 잘하는 것은 아니다. 10키로미터를 55분에 달리는 정도이니 웬만한 대회에서는 중하위권의 수준이다. 그저 SLOW & LONG(천천히 그리고 오래)이 나의 달리기 방법이다. 가끔씩 아마추어대회에 나가보기도 한다. 그냥 달릴 수도 있지만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게 달려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서다. 그럴 때면 보통 나는 10키로미터 달리기를 아내는 5키로미터 걷기를 택한다. 그런 정도니 달리는 것에 무슨 의미를 둔 적은 없다. 그저 달리며 맞바람을 즐길 뿐이다. 더 좋은 것은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다 목표지점을 통과하여 멈추는 순간이다. 숨이 가라 앉으며 온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좀 엉뚱하게도 세상이 살.. 2005. 8. 14.
출장단상 - 스미마셍 외국을 다니다 보면 더러 외면하고픈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방콕에서 싱가포르 가는 타이항공을 탔다가 이른바 ‘어글리 코리안’의 한 전형을 보았다. 자리를 잡고 책을 보며 이륙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기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탑승을 하고 있었다. 아직 훤한 대낮이었음에도 술 좀 걸친 듯 얼굴이 불콰해져 있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맨 뒤쪽에서 걸어 들어오며 유난히 시끄러운 사람의 손에는 먹다 남은 시바스리갈이 들려 있었다. 내가 앉은 옆과 그 뒤쪽 좌석을 차지한 그들은 작은 유리병에 담아온 멸치볶음을 안주 삼아 다시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니 테이블을 접고 좌석에 앉아 달라는 승무원의 요청을 무시하고 .. 2005. 7. 6.
출장단상 - 세상에서 가장 큰 신발이 필요한 나라. 미국은 인구밀도가 낮은 대지적 특성 때문에 공공교통수단을 기준으로 해서 말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가 중의 하나로 꼽힌다.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선진이 아니다. 그들은 일본의 신칸센(新幹線)을 미래학적 교통수단 (FUTURISTIC TRANSPORTATION)이라고 선망하고 있다. 신칸센을 설치할 재력과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회의 도구연관 속에서는 그러한 존재가 의미가 없고 따라서 재정적으로 유지가 되질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보스톤은 자가용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희유의 도시 중의 하나라고 꼽히지만 대부분의 도시에서(로스엔젤레스가 가장 후진적인 경우에 속함)는 자동차가 없이 문밖 출입을 할 수 없다. 구멍가게를 가는 것도 이발소 가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럼 그러한 사람에게 있어서.. 2005. 7. 6.
출장단상 - 빨래널기. 어릴 적 우리 집 뒷마당에는 긴 빨랫줄이 있었다. 그 빨랫줄에 어머니는 여러 가지 빨래들을 두드리고 삶아 널었다. 어머니의 번잡한 일상만큼이나 빨래들의 색깔과 종류도 다양했을 것이나 어찌된 일인지 나의 기억 속에 그 빨랫줄엔 늘 희고 깨끗한 빨래들만 널려있었던 것만 같다.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깔끔하신 살림 솜씨가 내 기억 속의 빨래들의 색깔조차도 정갈하게 표백시켜놓은 탓일 게다. 아직 내게 아파트건 단독주택이건 집에 널려있는 빨래는 생활의 냄새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샌디에고에선(아파트에선?) 빨래를 베란다에 널지 못한다고 한다. 설혹 넌다고 하더라도 베란다 높이보다 낮은 위치에 널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빨래 건조의 실용성보다 도시 미관을 우선 고려한 방식이리라. 홍콩이나 중.. 2005. 7. 6.
출장단상 - 그들의 성조기. *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국경 검문소-차량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영화 '트래픽'에도 나오는 곳이다. * 미국에서 멕시코 티후아나시로 들어가는 국경입구 - 자유롭게 입국이 가능하여 한가롭다. 미국 현지 법인에서 근무하는 직원 차의 조수석 앞에는 작은 성조기 두 개가 교차해서 세워져 있다. “웬 성조기?” “그냥. 이렇게라도 하면 국경 검문소 통과가 조금이라도 쉬울까 해서요.” 현지 직원은 좀 겸연쩍어 하며 말했다. 샌디에고의 미국 법인은 인접한 멕시코의 티후아나(TIJUANA)에 공장을 갖고 있는 터라 매일 출퇴근시에 최소한 두 번은 국경선을 넘어야 한다. 아침 출근 시에 멕시코로 넘어가는 것은 쉽게 통과를 할 수 있으나 문제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퇴근 때이다. 늘 국경을 넘어 미국.. 2005. 7. 6.
겨우 존재하는 것들 산 아래 모든 집들이 가슴 앞에 불 하나씩 단정하게 달고 있습니다. 앓아누운 노모가 자식의 손에 자신의 엷은 체온을 얹듯 세상의 어둠 위에 불들은 자신의 몸을 포갭니다. 땀보다도 그림자보다도 긴 흔적들 짚불보다 더 뜨겁습니다. 불빛 너머 손금처럼 쥐고 그댈 그리워하던 내 마음도 창호지 밖 그림자로 어룽입니다. - 강형철의 시, “겨우 존재하는 것들 3” - ‘세상의 어둠에 자신의 몸을 포개’던 불빛이 사라진 옛집들은 우리를 스산하게 합니다. 떨어져나간 문짝이며 버려진 세간들, 아직 벽에 걸린 낡은 달력과 구구단표, 빛 바랜 몇 줄의 낙서는 우리를 애처롭게 합니다. 울타리를 따라 하얗게 핀 찔레꽃도 더 이상 화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잡풀 우거진 마당을 서성이다보면 아직도 흘러가는 시간과 싸우며 한 .. 2005. 5. 19.
행복한 영화보기 15. - 주먹이 운다 내게 한 친구가 있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회사로부터 갑작스런 ‘명예퇴직’을 통고 받았다. (‘명예퇴직’ 이란 단어를 누가 만들었을까? 꼭 조롱하는 느낌이 든다.) 그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집요하게 연습에 열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아직 자신있다.” 나는 그 때 그의 말이 마라톤에 대한 자신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에 대한 자신인지 묻지 않았다. 얼마 전엔 한 프로야구단 선수들이 성적이 부진하자 삭발을 했다. 명예퇴직과 달리기. 야구 성적과 삭발.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관계가 없다. 영화 속에서 한 때는 나라를 대표한 권투선수였지만 사업은 실패하고 부인과 아이마저 떠나 버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한 사내는 중년의 나이에 권투신인왕전에 도전.. 2005. 5. 13.
행복한 영화보기 14. - 실미도 30여 년 전이니 중학교 때였다.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고교야구대회를 중계하던 방송이 별안간 중단되면서 뉴스속보가 흘러나왔다. 무장공비들이 시외버스를 탈취, 서울로 진입하여 유한양행 앞에서 군, 경과 대치 중이라는 것이었다. 뒷날 나는 그것이 북에서 온 공비들이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보내는 ‘간첩’이라는 사실을 어른들의 수군거림에서 알게 되었다. 그때 뉴스속보의 내용은 바로 영화 실미도의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가급적 가상의 이야기로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었다. 새해 첫 영화를 보며 너무 불편해지기 싫었다. 마치 허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긋하게 보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비극의 강조를 위해 설정을 해둔 상투성은 속속 드러나 보였다. 가장 손쉬운.. 2005. 4. 28.
가지 않은(못한) 길 휴일. 오래간만에 아내와 집안 정리를 하다가 초등학교 시절의 딸아이에게 그려준 나의 만화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두호씨의 만화를 보고 그린 것입니다. 아주 어렸을 적 나는 만화가를 꿈꾸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만큼이라도 남의 그림을 배낄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의 흔적 때문일 겁니다. 미국의 어떤 시인은 숲속에 난 두 갈래의 길중에서 다음 날을 위하여 남겨둔, 그러나 끝내 걸어보지 못한 한 길에 대하여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돌이켜 볼 것이라 하였지만... 40이 넘은 나이에 돌이켜보는 우리네 지난 날이 그다지 많은 선택의 여유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아 가지 않은(혹은 가지못한) 다른 어떤 길에 대하여 한숨까지 쉬어야 할 정도로 큰 아쉬움이 남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가지 않았을 뿐이라고 기세등등,.. 2005.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