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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363

행복한 영화보기 15. - 주먹이 운다 내게 한 친구가 있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회사로부터 갑작스런 ‘명예퇴직’을 통고 받았다. (‘명예퇴직’ 이란 단어를 누가 만들었을까? 꼭 조롱하는 느낌이 든다.) 그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집요하게 연습에 열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아직 자신있다.” 나는 그 때 그의 말이 마라톤에 대한 자신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에 대한 자신인지 묻지 않았다. 얼마 전엔 한 프로야구단 선수들이 성적이 부진하자 삭발을 했다. 명예퇴직과 달리기. 야구 성적과 삭발.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관계가 없다. 영화 속에서 한 때는 나라를 대표한 권투선수였지만 사업은 실패하고 부인과 아이마저 떠나 버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한 사내는 중년의 나이에 권투신인왕전에 도전.. 2005. 5. 13.
행복한 영화보기 14. - 실미도 30여 년 전이니 중학교 때였다.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고교야구대회를 중계하던 방송이 별안간 중단되면서 뉴스속보가 흘러나왔다. 무장공비들이 시외버스를 탈취, 서울로 진입하여 유한양행 앞에서 군, 경과 대치 중이라는 것이었다. 뒷날 나는 그것이 북에서 온 공비들이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보내는 ‘간첩’이라는 사실을 어른들의 수군거림에서 알게 되었다. 그때 뉴스속보의 내용은 바로 영화 실미도의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가급적 가상의 이야기로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었다. 새해 첫 영화를 보며 너무 불편해지기 싫었다. 마치 허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긋하게 보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비극의 강조를 위해 설정을 해둔 상투성은 속속 드러나 보였다. 가장 손쉬운.. 2005. 4. 28.
가지 않은(못한) 길 휴일. 오래간만에 아내와 집안 정리를 하다가 초등학교 시절의 딸아이에게 그려준 나의 만화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두호씨의 만화를 보고 그린 것입니다. 아주 어렸을 적 나는 만화가를 꿈꾸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만큼이라도 남의 그림을 배낄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의 흔적 때문일 겁니다. 미국의 어떤 시인은 숲속에 난 두 갈래의 길중에서 다음 날을 위하여 남겨둔, 그러나 끝내 걸어보지 못한 한 길에 대하여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돌이켜 볼 것이라 하였지만... 40이 넘은 나이에 돌이켜보는 우리네 지난 날이 그다지 많은 선택의 여유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아 가지 않은(혹은 가지못한) 다른 어떤 길에 대하여 한숨까지 쉬어야 할 정도로 큰 아쉬움이 남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가지 않았을 뿐이라고 기세등등,.. 2005. 4. 28.
충주를 지나며. 어둠 속에서 누구나 부른다 행인이 있으면 누구나 손짓을 한다 아무개 아니냐, 아무개 아들이 아니냐 또랑물에 발을 담근 채 노래도 그친 채 논둑에 앉아 캄캄한 밥을 먹는 농부들 일찌기 돈도 빽도 없이 태어난 농부들 사람이 죽으면 지붕 위에 속옷을 던져 놓고 울던 농부들 정든 조상들이 죽어 묻힌 산줄기에 에워싸여 자식이나 키우며 감나무나 키우며 살아가더니 오늘은 어둠 속에서 누구나 부른다 가까이 가보면 젊은이들은 그림자도 없고 늙은이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 밥을 이고 나온 꼬부랑할멈뿐인데 아무개 아니냐, 아무개 아들 아니냐 덥석 손을 잡고 많이 먹고 가라 한다 수렁냄새 젖은 손가락으로 김치도 찢어주며 오동나무 잎새에 머슴밥을 부어 놓는다 밤길을 아니 걷는 게 영리한 것이여 밤엔 사람이 제일로 무서운 놈.. 2005. 4. 27.
내게 힘을 주는 사랑 2.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 중에서 - 4월초 어느 날 나는 딸아이와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고 아내는 그런 나의 사진을 찍어 주던 날. 생각하거나 바라보면 그렇게 늘 거기 있는 사랑.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 2005. 4. 23.
내게 힘을 주는 사랑 딸아이가 가끔씩 출장 가는 가방 속에 넣어준 엽서와 메모. 그것들을 모아 여행의 필수품으로 늘 지니고 다닙니다. 출장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 호텔을 나서기 전 커피를 마시며 하나씩 읽어보노라면 신비로운 향기와 따뜻함 같은 것이 온 몸에 퍼지면서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술 같은 힘이겠지요. 오늘도 씩씩하게 방문을 열고 나갑니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습니다. 그 속에 세상일은 더욱 작고 만만해 뵙니다. 까짓거!!! 2005. 4. 19.
경기 두물머리에서 삶은, 달이 지나가는 물길만큼 많은 밤들을 뒤채이며 갈 수밖에 없다 산아 나무야 서쪽에 돋는 별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나를 기대고 내 일생을 견디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저 강 저 깊은 달빛을 건질 수 없듯이 이 세상 그 어떤 가지와 뿌리로도 닿지 않은 깊은 곳이 있을지라도 이 세상에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은 없다 -김용택의 시, 「강」중에서- 2005. 4. 4.
봄편지 2 저 부부 저 다가구주택 반지하 방 한 칸에 세들어 사는 젊은 부부 남편은 공단 어느 수출회사에서 밤늦도록 야근을 하고 아내는 집에서 가내공업 부업도 마다하지 않는 젊은 저 부부 우리, 지난 겨울 문 닫고 살며 서로 얼굴조차 못 보고 살았는데 오늘은 날씨도 화창한 이른 봄날 일요일 저 부부 유모차에 지난 겨울 새로 태어난 아기 태우고 환하게 웃으며 골목길을 나선다 누가 우리의 봄을 암울하다고만 하는가? 저 환하게 웃는 젊은 부부를 반기기라도 하려는 듯 골목 울너머 개나리꽃도 환하게 오늘 꽃망울을 터뜨렸다 -김명수의 시, 「봄 날」- 2005. 2. 27.
봄편지 1. 겨우내 창문 틈새로 들어와 몸을 웅크리게 했던 찬바람이 멎고 어젯밤은 밤새 꿈결처럼 아지 못할 수런거림이 들리더니 자리를 차고 나가 본 아침 아! 세상이 변했구나 ......(중략)...... 부러 찬물을 받아 얼굴을 씻으니 마음의 때가 떨려나가듯 두 팔은 벌어져 하늘을 향하고 반짝이는 듯 마음은 열려 아직 자고 있는 모든 것들을 깨우고 싶어진다. 일어나라 일어나 이 세상의 온전함을 느껴보자 봄이 오고 있다. -박형진의 시, 「봄 편지」 중- 2005.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