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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24

호두를 까는 주말 아침 간밤에 주말 아침 음식으로 무슨 죽을 원하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견과류죽!”이라고 했다. 아몬드와 땅콩, 그리고 잣과 호두를 갈아 넣은, 몇 주 전에 만들었던 죽을 말함이다. 인터넷이나 책을 참고하지 않고 그냥 집에 있는 재료들을 모아 짬뽕으로 만든 ‘창작품’인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미 글로 쓴 것처럼 이 죽을 만드는데 가장 성가신 일은 호두껍질을 벗기는 일이다. 끓는 물에 식초를 한두 방울 넣고 데쳐내듯 삶아서 이쑤시개처럼 끝이 날카로운 도구로 주름진 호두의 골과 골 사이를 쑤시며 달래듯 살살 벗겨내야 한다. 성미가 급한 나로서는 갑갑증이 솟는 일이어서 아내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특별한 미식가가 아니고선 혼자만의 한끼 식사를 위해 결코 주말 아침에 호두를 다듬지는 않으리라. 함께 산다는 건 .. 2013. 8. 11.
패트릭, 독수리를 잡다 그가 드디어 독수리를 잡았다. 시기는 2013년 7월6일. 장소는 CHULA VISTA GOLF MUNICIPAL COURSE 13번홀. 나는 내 볼을 치느라 패트릭님의 볼이 홀컵으로 들어가는 결정적 순간은 보지 못했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 내 눈으로 확인했다면 아마 심장에 충격이 전달됐을 것이다.) 환호 소리에 ‘참사’를 뒤늦게 알고 나서 황소 뒷발로 쥐를 잡은 격이라며 애써 패트릭님의 행운과 기술을 폄하해야 했다.^^ 이글 기념식 겸 회식 자리에서 아내는 그래도 꽃다발도 하나 있어야지 않겠느냐고 시키지도 않은 가산을 추가로 축내며 우리 ‘불우이웃’들의 아픈 배를 더 쓰리게 했다. “아무튼 독수리, 너! 다시 또 패트릭한테 잡히면 죽는다!“ 우쒸! 독수리는 아니더라도 아쉬운 대로 '참새'라도 자주 .. 2013. 8. 5.
아스파라거스 언젠가 어느 식당에선가 아내가 음식이 담긴 접시 속을 가리키며 "나는 이 아스파라거스 ASPARAGUS가 참 좋더라"하고 말한 적이 있다. 며칠 전 먹을 거리를 사러 마켓에 갔다가 그 아스파라거스가 눈에 띄었다.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아내를 생각하며 한 묶음을 집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이걸 삶아서 쌈장에 찍어먹어야 하나 어쩌나를 생각하다가 식당의 기억을 되살려 토막을 쳐서 기름에 볶아 보았다. 얼마 동안 볶아야 다 익었는지를 몰라 볶으면서 연신 먹어보아야 했다. 먹어보고 더 볶고 먹어보고 더 볶고...... 덕분에 날 걸로 먹은 것이 1/4은 되었다. 나중에 전화로 아내에게 말을 했더니 먼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볶으라고 알려주었다. 책에서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2013. 7. 31.
딸아이에게 음식 만들어주기 샌디에고에서 갈고닦은(?) 솜씨를 한국에 있으면서 딸아이에게 보여주었다. 딸아이는 내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은 천주교 신자가 되어 ‘식사 전 기도’를 하는 모습만큼이나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때마침 놀러온 처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홈페이지에서 내가 만든 음식의 사진과 글을 보긴 했지만 이전의 장돌뱅이 행태로 보건데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아내가 곁에서 “정말이야. 너네 형부 음식 잘 해.”하는 응원의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할 줄 아는 열 가지 미만의 음식 중에서 비교적 아내에게 후한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세 가지를 골랐다. 닭날개구이와 두부전골과 총각김치볶음밥. 요리 경연대회에 참석한 식객의 마음으로 상을 차려내고 자못 긴장되어 식구들의 눈치를 .. 2013. 7. 31.
이영표선수 화이팅! 지난 연말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집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잠시 달리기를 하러 갔다. 여느 때처럼 운동장에선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트랙을 돌면서 간간히 내 앞으로 굴러온 공을 운동장 안으로 돌려 차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 사람에게 눈이 가게 되었다. 공을 다루는 솜씨와 스피드가 예사롭지 않은 짧은 머리에 자그마한 덩치의 젊은이었다. 얼핏 이영표 선수를 닮았다고 생각해보았지만 MLS(MAJOR LEAGUE SOCCER)에 진출한 이 선수가 엄동설한에 이곳에서 동네축구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실제로 이영표선수였다. 알고보니 그는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연말 휴가 중 몸이 근질거리기라도 했는지 몸을 풀러나왔는데, 그를 알아본 사람들과 공을 차게 된 것이.. 2013. 7. 31.
뮤지컬 "영웅" 딸아이가 아내와 내게 연말 선물로 보여준 뮤지컬 "영웅". 아내와 딸아이는 이미 여러번 뮤지컬 공연을 경험했지만 나로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본 뮤지컬이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라이언킹" 이후 두번째이고. 한번을 보더라도 제대로 된 공연을, 가급적 좋은 좌석에서 보아야한다는 평소의 주장대로 딸아이는 무대 중앙 앞쪽의 좌석을 준비해두었다. 제법 '거금'이 들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전체적으로 볼만한 공연이었다. 화려하고 시원시원한 무대장치와 박진감 넘치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율동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막간 휴식 시간 (인터미션) 이전 부분이 강렬했다. 후반은 도덕교과서처럼 다소 도식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딸아이는 미리 구입해 두었던 공연 씨디에 주연배우 정성화의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어릴 적 HOT의 .. 2013. 7. 31.
감자요리 감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알러지 ALLERGY 체질을 개선해준다고 한다. 거기에 열을 가해도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는 성질이 있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를 해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걸 고려해서 감자 요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사다 보니 감자 한 봉지를 사게 되었고 (지난번에 만든) 고추장찌개에 사용한 감자가 겨우 두 개뿐인 터라, 나머지 감자로 무엇인가 만들어 먹어야 했다. 생각해낸 것이 감자가 들어간 가장 흔한 음식 - 볶음과 국과 조림이었다. 아내가 만들었을 때만큼 은근하면서도 구수한 맛은 나지 않았다. 자극적인 양념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다 보니 나의 알량한 솜씨를 감출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흥겹게 만들었고 맛이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며 먹었다. (2011.12) 2013. 7. 31.
고추장찌개 운전을 배울 때 누군가 조수석에 앉아 도와주다가 처음으로 혼자서 도로운전을 나설 때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는가 내심 자신이 있다가도 막상 든든한 ‘빽’이 없어진 듯하여 허전하고 긴장되던...... 아내가 없이 혼자서 음식을 만들어보는 시도에도 그와 비슷한 걱정이 따라왔다. 얼마 전부터 내가 음식을 만들어본다고 했지만 곁에는 늘 아내가 있었다. 재료준비를 위해 장을 보는 것부터 조리 과정에 이르기까지 필요할 때마다 아내의 판단과 충고를 얻을 수 있었다. 아내가 주방에 서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엔 완전히 혼자였다. 아내가 곁에 없기 때문이다. 재료구입부터 시작해서 도마질과 간을 보는데 일체의 질문을 할 수 없었고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이번에 목표로 한 음식은 고추장찌개. 캠.. 2013. 7. 31.
요한묵시록 올 1년 동안 성경을 한번 읽었다. 성서 공부 교재와 함께 했다. 그러다보니 지난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을 한 것이 아니라 교재에 주제와 참고문으로 나와있는 대목을 위주로 읽었다. 우리나라의 모습이 성경 속의 옛 이스라엘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갈라진 국토와 외세에 밟히고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과 그런 외세에 부응하는 권력, 도그마로 변한 정책과 이념과 교리, 거기에 갇힌 종교지도자..... 야고보서의 말처럼(2장) 그들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 형제 자매에게 그들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근엄하게 찌껄인다. 육신과 영혼을 분리하고 교리를 추상화하고 개인화 한다. 현실과 역사를 하느님의 나라와 따로 둔다. 아직 내가 믿음이 .. 2013.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