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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77

샌디에고 걷기5 - CANYON CREST TRAIL 라호야보다 조금 북쪽에 있는 트레일. CANYON 이라 하지만 계곡의 윗쪽으로는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한국처럼 고층빌딩이 아니라 모두 단층의 주택들이라 숲속에 묻힌 것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 골짜기는 원래 있던 그대로의 숲이다. 새들과 뱀과 토끼와 꽃과 나무들이 그곳에서 산다. 인간만이 이 땅위에 주인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흔하고 작은 존재들에게 좀더 겸손해야 한다.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사람이 지나갈만한 폭에 흙길이라 정감이 간다. 아내를 앞세우고 걷는 길이 흡족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름난 곳이야 당연히 가볼 가치가 있겠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찾는 시간도 그에 못지 않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에는 가치가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법.. 2012. 5. 21.
샌디에고 걷기4 - 라호야 LA JOLLA 해변 샌디에고 북쪽에 있는 라호야 LA JOLLA 해변. 자동차로 해안을 달리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집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사는 국경 부근 동네의 규격화된, 그래서 그 모양이 그 모양인 집들과 달리 이곳의 집들은 저마다 호사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외양을 지녔다. 커다란 통유리의 거실과 넓은 테라스가 태평양을 향해 있다는 점만이 같을 뿐이다. 부러워했던가. 솔직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바라보는 태평양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별의미 없는 상상조차 가난한 나라의 성냥곽만한 아파트에 살다온 아내와 내게는 어차피 너무 비현실적일 뿐이어서 오래 남겨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감나게 부러웠던 것은 길거리 카페의 탁자에서 털북숭이 애견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한 사내의 다감한 눈빛이었고 팔걸이 의자에.. 2012. 5. 21.
샌디에고 걷기3 - 썬셋클리프 트레일 이 TRAIL을 소개하는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처음에 나왔다. "SOME PEOPLE LIVE IN THE SAN DIEGO AREA, THEIR ENTIRE LIFE WITHOUT KNOWING ABOUT SUNSET CLIFFS PARK." 그렇 듯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다. 샌디에고에서도 그럴진대, 다른 도시에서 이곳을 보기위해 올 사람이나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곳보다 '로컬'들이 가는 숨겨진 곳에 주목하는 여행자들을 종종 보지만 나는 '로컬'들만 가는 곳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곳에 비해 어떤 의미에서건 상대적인 우위나 열등의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SUNSET CLIFFS TRAIL은 샌디에고에 살므로 갈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 .. 2012. 5. 21.
샌디에고 걷기2 - 티후아나 강변 지난 봄 한국 방문 기간동안 아내는 갑작스럽게 수술을 받게 되었다. 건강검진의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수술 직후 의사는 아내에게 하루에 한 시간 정도의 걷기를 지시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아내는 이런저런 주사병과 줄을 매단 채로 매일 병원 복도를 걸었고 퇴원을 하여 집에서 몸조리를 하면서도 방과 거실 왕복하며 걷기를 계속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오는 아내에게 주어진 숙제도 골프와 수영 대신에 걷기였다. 걷는다는 일은 생활을 유지하는 기본일 뿐만이 아니라 재활 치료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인 것 같았다. *위 사진 : 샌디에고 티후아나 강 어귀의 광활한 초원지대 아내가 오기 전 나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 시간 이내의 짧은 트레킹 코스를 조사해 두었다. 조사를 하면서 샌디에고에는 콘크리트 일색인 우리의.. 2012. 5. 21.
샌디에고 주변 작은 마을 줄리안 JULIAN '와일드와일드웨스트' 시절의 이야기일까? 샌디에고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가량가면 줄리안이란, 예전에 금광때문에 개발되었다는, 작은 마을이 있다. 지금은 폐광이 되어버린 광산과 사과 파이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붉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가을철이면 작은 축제도 열린다. 굉장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지는 않지만 오고 가는 길의 풍광과 함께 아기자기한 마을의 모습이 아내와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다. *위 사진 : 줄리안 가는 길에 있는 CUYAMACA 호수 *위 사진 : 사과파이로 유명하다는 식당. 이곳 이외에도 줄리안에는 사과파이를 만드는 식당이 여럿 있다. 2012. 5. 21.
산과 바다와 호수가 있는 길(샌디에고 주변) 우리는 걷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 중의 하나가 여행이라는 말에 반감을 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아내와 나 역시 여행만큼 꿈과 현실이 감미롭게 만나는 시간을 달리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편안한 휴식일 수도 있으며, 삶을 건 도전과 긴장일 수도 있다. 어떤 유무형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사라져 버린 것을 찾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다짐을 하거나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새로운 의미가 내다보이는 창문이기도 하고 익숙한 가치를 씻어내는 맑은 물줄기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로 말하건, 아내와 내게 여행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꿈같은 약속이 가득한 마법의 상자”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아내와 나는 여행만큼이나 걷는 일.. 2012. 5. 3.
팜스프링스에서 보낸 2박3일(상) 귀에 익숙한 미국의 지명 미국에 와서 살면서 새삼 느끼는 거지만 가본 적도 없고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생각해보면 귀에 익은 미국의 지명이 참 많다. 예를 들어 스와니강. 일 삼아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 강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고 모두 포스터라는 미국 작곡가의 노래를 통해 알고 있었다. 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날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이 세상에 정처없는 나그네의 길 아 그리워라 날 설던 곳 머나먼 옛고향 말할 것도 없이 초중고 동안에 이루어진 교육의 효과이다. 해방과 전쟁 그리고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현대사에 끼친 미국의 영향은 실로 강력하여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정치, 경제, 문화에 걸쳐 스며들지.. 2012. 4. 26.
샌디에고 걷기 풍요로운 생활을 위하여 “영조가 치매에 걸렸더군.” 식사 도중에 누군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밥숟가락을 떠올리다가 나는 ‘무슨 소린가?’ 하여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다른 누군가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더욱 황당한 대꾸를 했다. “치매 걸린 지가 언젠데? 아마 한 달은 됐을 건데.” “웬 영조?????......?” 나는 물음을 던졌지만 대답이 나오기 전에 또 다른 사람의 말이 이어지면서 식탁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다. “영조, 어제 저녁에 죽었어. 이 사람들아.” 그들은 연속극 「이산」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혼선은 한국의 정규방송보다 한달 쯤 늦은 위성 텔레비전으로 연속극을 보는 사람과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보는 사람, 그리고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보는 사람들 간에 시차가 반영되.. 2012. 4. 25.
SAN DIEGO 12 - 크리스마스 작년 연말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던 저녁 화사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들이 눈길을 끌어 차를 멈추고 카메라로 잡아 보았다. 한두 집도 아니고 거의 모든 집들이 색색의 전구와 크고 작은 장식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아무쪼록 그런 소담스런 마음들이 어두워가는 저녁의 불빛처럼 점점 더 밝게 세상을 비추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4. 12) 2012.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