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한국463 경상도의 절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라벌에는 '절이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이 기러기 행렬처럼 늘어서 있었다(寺寺星張 塔塔雁行)'. 어디 서라벌 뿐이랴. 삼국시대이래 전 국토가 그렇게 변모해 온 것은 아닐까? 심오한 교리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내게 불교는 하심(下心)이다. 하심은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라고 한다. 영암사 들머리 신령스런 기운이 돈다는 육백 년 넘은 느티나무 밑에서 아내한테 말했습니다 "여보, 이렇게 큰 나무 앞에 서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져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일 년도 안 된 작은 나무 앞에 서 있어도 저절로 머리가 숙여져요" -서정홍의 「아내는 언제나 한 수 위」- * https://youtu.be/etmQzVpTuMs 2020. 7. 27. 충청도의 절 문빈정사 섬돌 위에 눈빛 맑은 스님의 털신 한 켤레 어느 날 새의 깃털처럼 하얀 고무신으로 바뀌었네 -최윤진, 「봄」- 섬돌, 눈빛 맑은 스님, 새의 깃털, 하얀 고무신. 절을 향해 걸어갈 때면 떠오르는 정갈함. 거기 그렇게 오래 있어 주기를······ * https://youtu.be/mXvLjDhk1z4 2020. 7. 22. 서울·경기·강원의 절 나는 지금 잠시 동안이나마 당신 옆에 앉을 은총을 구합니다. 지금 하던 일은 뒷날 마치겠습니다. 당신의 얼굴 모습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내 가슴은 안식도 휴식도 없고, 나의 일은 가없는 고통의 바다속 끝없는 고통이 됩니다. 오늘 여름은 산들거리고 속삭이며 내 창가에 왔고 별들은 꽃덤불 정원에서 부지런히 시를 읊습니다. 지금은 말없이 당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이 조용하며 넘치는 안일 속에서 생명의 헌사를 노래할 시간입니다. -타고르의 「기탄잘리 5」- 2020. 7. 18. 기억 속 폐사지 몇 곳 *경북 감포 감은사터 *경주 무장사터 가는 길 폐사지는 해찰하기 좋은 곳이다. 바람과 햇볕에 그냥 가벼이 몸을 내맡긴 채 천천히 서성거리거나 아무 곳에나 걸터 앉으면 된다. 생성과 성장과 소멸의 사연만 남은, 때로는 아무 내력도 알 수 없는, 남겨진 흔적과 사라진 여백의 조화가 편안한 폐사지는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무언가 충만해짐을 느낀다. (폐사지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스산한 서정이다. 그 폐허에서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그 나름의 또 다른 종교 감정이 아닐 수 없다. -유홍준의 글 중에서- 불필요한 뱀다리겠지만, 아내와 나의 종교는 천주교이다. 2020. 7. 16. 꽃그늘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 이라던 책이 있던가요? 저마다 꽃들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자리에서 피어나 계절을 완성합니다. 지난 사진 속 꽃그늘로 들어가 긴 들숨과 날숨으로 위안을 얻고 희망을 키우고 싶은 시간입니다. "HOPE FROM THE FLOWERS!" 꽃그늘 속으로 바람이 불고 시간의 물방울 천천히 해찰하며 흘러갑니다. -이재무의 시 중에서- 2020. 6. 28. 성북동 걷기 석 달 만에 지하철을 탔다. 그동안 여행은커녕 외출조차 최소한으로 자제하며 지냈고 꼭 멀리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직접 운전을 해야 했다. 다시 말하기도 지겹지만, 최근에 겪은 모든 비정상적인 상황은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덕분에 손자친구를 자주 볼 수 있던 것은 즐거웠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는 점에서 둘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야니님과 아니카님을 만나서 낙산성곽길을 걸었다. 길은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어서 편안했고 투명한 공기는 언덕을 오를수록 우리의 시야를 먼 곳까지 틔워주었다. "노동처럼 유익하고 예술처럼 고상하고 신앙처럼 아름다운" 산행을 꿈꾼다는 산악인이 있었던가. 이 수식어를 걷기에 가져와도 어색할 리 없겠다. 더군다나 화사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 속을 '유익하.. 2020. 5. 15. 잘 먹고 잘 살자 60 - 해물잡채 *위 사진 : 『음식디미방』으로 재현한 잡채(황광해 사진) 기록상 잡채(雜菜)라는 음식이 등장한 것은 오래 되었다. 1630년 신흠(申欽)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 임금에게 잡채나 침채(오늘 날 김치), 더덕(沙蔘) 등을 바치고 높은 벼슬을 얻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를 두고 '잡채상서(雜菜尙書)'니 '침채정승(沈菜政丞)'이니 ‘사삼각노(沙蔘閣老)’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음식으로 벼슬을 얻었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임금이 반정으로 물러난 광해군이고 보면 반정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앞선 권력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들어간 기록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런 문제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약 400년 전에 잡채라는 음식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다만 당시.. 2019. 10. 26. 잘 먹고 잘 살자 59 - "라따뚜이" 「라따두이」는 픽사(PIXAR) 애니메이션에서 만든 영화 제목이다. 요리사를 꿈꾸는 절대미각의 생쥐와 파리 최고급 식당 주방에서 일하지만 요리를 못해 구박만 받으며 청소부로 일하는 청년이 힘께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이다. 픽사가 만드는 애니메이션 영화 - 「라따뚜이」외에도 「토이 스토리」시리즈, 「니모를 찾아서」, 「카」시리즈, 「UP」 등등 - 은 우선 믿음이 간다. 감동과 여운이 있다. 아내와 나는 그중에서도 「UP」을 가장 좋아한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어릴 적 꿈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에게 어른의 시간이란 넥타이를 몇 번 매고 풀면 지나가 버리는 단조롭고 덧없는 것이었다. 흔히들 만화영화를 어린이용이라 여겨서 관람 대상에서 쉽게 제외한다. 하지만 정확.. 2019. 10. 21. 잘 먹고 잘 살자 58 - 소금에 대하여 소금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 무기질 중의 하나이다. 때문에 소금이 귀한 옛날에는 화폐로서의 기능도 했다. 로마에서는 군인이나 관리의 봉급을 소금으로 주기도 했다. 봉급을 의미하는 영어 "Salary"는 ‘병사에게 주는 소금돈’을 의미하는 라틴어 "Salarum"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금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조미료이자 음식의 맛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다. 감미료나 산미료와는 달리 소금 이외에는 대체할 다른 재료가 없어 독보적이다.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가 동일한 비율로 결합되어 있다.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 이외에도 다른 불순물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생리활성 물질이다. 정제 과정을 통해 이러한 불순물을 제거한 구운 소금이나 죽염등이 있지만 반드시 불순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만은 아니다. 김.. 2019. 9. 26.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