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한국463 제주살이 10 - 머체왓숲과 사려니숲 머체왓숲을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니 노선버스로는 갈 방법이 없다. 택시를 불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제주 북쪽 해변 마을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는 지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함께 머체왓숲을 가자는 우리 부부에겐 행운스런 제안을 했다. 그는 서울에서부터 차를 가지고 와 있었다. 서귀포시 한남리에 위치한 머체왓은 돌(머체)이 많은 밭(왓)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 살던 주민들이 4.3 때 피해를 입으며 마을 자체가 사라졌다가 2012년 숲길이 조성되어 머체왓이라는 이름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숲길에 들어서기 직전 나지막한 푸른 언덕과 만나게 된다. 탁트인 언덕 위에는 나무 두세 그루와 작은 평상과 의자가 있다. 멀리 한라산의 모습이 아스라히 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풍경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 2021. 10. 11. 제주살이 9 - 카페 매일 하루 외부 일정의 마지막은 카페에서 보냈다. 커피나 음료,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카톡을 나누거나 책을 읽고, 아니면 그냥 '숲멍', '바다멍'을 하며 빈둥거렸다. 제주에 왔고 올레길을 걸었고 숲과 바다를 보았고 카페에 온 것이다. 뭘 더 바라겠는가? 1. 서홍정원 서귀포 도심을 흐르는 솜반천 옆에 있다.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숲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사과청 음료의 이름이 재미있게도 "사과해시원하게"였다. 2. 오르바 올레길 6코스가 지나는 보목포구에 있다. 바다를 접하고 있어 시원한 느낌이 가득하다. 제주산 에일맥주와 팥빙수로 올레길의 더위와 갈증을 식혔다. 3. 보래드 베이커스(BORAED BAKERS) 올레길 6코스 근처 호텔 서귀피안 안에 있다. 솜사탕처럼 찢어지는 크루아상에 커피가 좋았다.. 2021. 10. 7. 제주살이 8 - 식당밥 앞서 말한 대로 제주살이 전반부 동안 매일 점심 한 끼는 식당밥으로 해결했다.올레길 걷기나 기타 다른 일정의 소화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의 식당들에서였다. 식당은 인터넷을 검색하여 고른 곳도 있고 지나다가 우연히 들린 곳도 있다. 우연히 들린 곳도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기획되어 이미 인터넷에 올라 있었다. 나 혼자 즐기는 숨은 비경이라던가 '맛집'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매트릭스』 속 같은 세상이다.어쩔 수없다. 숱한 정보의 바닷속에서 나의 기호와 맞는 곳을 선택하는 수밖에. 맛깔스러운 식사 한 끼는 여행의 만족도를 높인다.1. 남원흑돼지 연탄골목식당 이름이 길고 특이하다. 첫날 저녁에 숙소 주변을 마실 가듯 천천히 걷다가 들린 곳이다. "제주도에도 연탄 공장이 있나요?" 주인에.. 2021. 10. 7. 제주살이 7 - 집밥 아내와 제주살이 식사의 기본 원칙을 세웠다. 아침은 미숫가루, 과일, 달걀프라이, 수프, 죽 등 간편식으로 한다. 점심은 일정을 보내는 장소에서 가까운 식당에서 해결한다. 저녁은 숙소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 외에 하루 한 곳 정도의 카페를 방문하여 커피나 차를 마시며 해찰을 부린다. 먹는 일은 형식적 일과가 아니라 일상은 물론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큰 기쁨 중의 하나이다. 매 끼마다 같은 음식을 가급적 반복하지 않고 아내의 기호에 맞춰 다양하게 만들어 내고 싶었다. 낯선 부엌 환경과 집에 비해 제한적인 재료와 양념, 여전히 부족한 나의 조리 실력 등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밥을 물에 말아 고추장 찍은 마른 멸치만 먹어도 집밥에는 식당밥이 가질 수 없는 정서가 있지 않은가. 식당밥의 기본 속성이 이.. 2021. 10. 5. 제주살이 6 - 버스여행과 제주말 제주에서 한달살기를 앞두고 차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차가 있으면 여행 중 이동이 당연히 신속·편리할 것인 데다가 필요한 물품을 차 안에 함께 실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제까지 제주 여행 때마다 사용했던 렌터카 비용이 코로나 여파로 최근에 급등했다지 않는가. 제주도에 차를 가져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가 목포나 여수, 완도 등지에서 차와 함께 배를 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대행업체에 의뢰하여 차를 배편으로 보내고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차는 제주항이나 성산포항 중 원하는 곳에서 찾으면 된다. 성산포 도착 가격이 더 저렴하다. 아내와 한동안 갑론을박 하던 끝에 이번 여행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제주도를 버스로 여행하는 일은 사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 2021. 10. 4. 제주살기 5 - 강정마을을 지나며 제주도 올레길 7코스를 따라 강정마을을 지날 때 이제까지 올레길이 주었던 '제주스런' 고즈넉함과 평화로움은 사라지고 문득 '아, 그렇지! 강정마을!' 하는 긴장 섞인 깨달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일상에 파묻혀 어느덧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단어들 - 생명과 자연과 평화. 한 때 우리 사회에 그런 단어들의 총체는 강정마을이었고 구럼비 바위였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들꽃 한 송이만도 못하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생명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2011년 조용한 어촌마을 강정에 갑자기 거대한 군사 기지 건설을 위한 철조망이 둘러쳐졌다. 일 년 뒤엔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 처절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년 동안 그 자리에 있어온 폭 1.2km의 거대한 구럼비 바위가 폭음과 함께 사라져.. 2021. 10. 2. 제주살이 4 - 옥상에 빨래 널기 밤 사이 비가 내리더니 날이 밝으면서 점차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창밖을 가리던 칙칙한 구름이 한라산 꼭대기로 몰려가자 강렬하고 눈부신 햇빛이 옥상 가득히 쏟아져 내렸다. 문득 햇빛이 아깝다는 생각에 서둘러 이불과 옷 빨래를 가져다 널었다. 숙소에 건조기가 있지만 제주의 햇빛과 바람에 댈 게 아니다. 빨래는 오래지 않아 바짝 마르고 햇볕을 가득 품어 뽀송뽀송해질 것이다. 옥상에 올라가 메밀 베갯속을 널었다 나의 잠들이 좋아라 하고 햇빛 속으로 달아난다 우리나라 붉은 메밀대궁에는 흙의 피가 들어있다 피는 따뜻하다 여기서는 가을이 더 잘 보이고 나는 늘 높은 데가 좋다 세상의 모든 옥상은 아이들처럼 거미처럼 몰래 혼자서 놀기 좋은 곳이다 이런 걸 누가 알기나 하는지 어머니 같았으면 벌써 달밤에 깨를 터는 가.. 2021. 9. 30. 제주살이 3 - 청귤청 만들기 제주도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한 추사 김정희는 자신이 살았던 집을 귤중옥(橘中屋)이라 불렀다. 귤나무 속에 있는 집이라는 뜻이겠다. 귤은 오직 제주도의 전유물이고 겉과 속이 다 깨끗하고 우뚝한 지조와 꽃답고 향기로운 덕이 다른 것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어서 당호(堂號)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사의 눈에 아름다운 서정으로 가득한 귤은 당시 제주 백성들에겐 고통을 가중시키는 진상품 중의 하나였다. 육지의 중앙 권력은 귤의 생산·운송·분배의 전 과정을 관리하고 통제했다. 귤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꼬리표를 달고 숫자까지 기록하였다. 백성들은 열매가 없어지면 엄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때문에 백성들은 귤나무를 더 심으려고 하지 않았고, 더운물을 끼얹거나 송곳으로 구멍을 내어 죽이기도 했다. "중앙 권력은 귤을 .. 2021. 9. 27. 제주살이 2 - 수평선 저 빨랫줄 참 길게 눈부시다 태양을 널었다가 구름을 널었다가 오징어 떼를 널었다가 달밤이면 은빛으로 날아다니는 갈치 떼를 널었다가 옛날에는 귀신고래도 너끈하게 널었다는 그래도 아직 단 한 번 터진 적 없는 저 빨랫줄| 한라산과 백두산이 가운데쯤 독도를 바지랑대로 세워놓고 이쪽, 저쪽에서 팽팽하게 당겨주는 참 길게 눈부신 저, 한국의 쪽빛 빨랫줄 - 배한봉 「수평선」- 호쾌한 상상이다. 수평으로 가득한 직선 위에 태양을 널고 구름을 널고 오징어 떼와 갈치 떼를 널어 보다가 마침내는 독도쯤에 바지랑대를 세우고 한라산과 백두산을 잇는 상상. 제주도에는 저 아득한 수평선 넘어 어딘가에 하얗게 솟아 있다는 상상 속 낙원, 이어도의 전설이 있다. 그 섬으로 간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제까지 갖지 못한 복락을 누리기 때.. 2021. 9. 25.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