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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63

인천 선재도 딸아이네가 선재도의 한 카라반 숙소를 예약해서 다녀오게 되었다. 차량에 달고 다니는 이동식 주택을 해변 바로 앞에 고정 배치한 숙소였다. 선재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차로 갈 수 있다. 행정 주소는 인천 옹진군 영흥면이지만 그보다 대부도 옆에 있는 섬이라고 하면 한결 쉽게 위치가 파악된다. 체크인을 하고 첫째 손자와 바닷가로 나갔다. 하늘과 바다가 탁 트인 날씨여서 걷기에 더없이 좋았다. 특별한 놀이 기구는 없었지만 서로 장난을 걸며 달리기를 하거나 해변의 돌과 조개껍질을 바다로 던지기도 하며 놀았다. 아이들은 모든 걸 놀이 도구로 바꾸는데 천재적이다. 첫째 손자는 돌이 되기 전에 해외여행도 했지만 코로나 시대에 태어난 둘째는 좀처럼 집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발걸음도 잘 떼지 못하는 아이가 마스크를.. 2021. 10. 26.
제주살이 18 - 붉은오름과 절물오름 1702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은 제주도 및 그 주변 도서의 자연·역사·산물·풍속·방어 등에 대해 기록한 『남환박물』을 남겼다. 그 책에는 제주도의 오름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한다. 한라산은 한가운데가 우뚝 솟아 있고 여러 오름들이 별처럼 여기저기 벌리어 있으니, 온 섬을 들어 이름 붙인다면 연잎 위의 이슬 구슬의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제주 오름에 관심이 있거나 한 번이라도 오름을 걸어본 사람은 그 표현이 피부에 와닿으리라. 제주도는 한라산과 오름, 그리고 바다로 삶을 규정한다. 거기에 바람과 구름과 햇볕이 더해진다. 길은 산과 숲과 초원과 바다를 지나며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붉은오름과 절물오름은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좋아 뚜벅이 여행자도 편리하게 갈 수 있었다. 붉은오름 자.. 2021. 10. 24.
제주살이 17 - 카페(후반부) 비단 제주도만의 현상은 아니겠지만 제주도에는 카페가 참 많다. 아름다운 뷰와 시선을 끄는 기발한 장식과 분위기, 그리고 맛난 음료를 준비한 카페들이 가는 곳마다 널려있다. 2010년 불과 100여 개였던 제주도 내의 카페는 2017년 12월을 기준 약 1800개로 급증했으며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힌 최근에는 증가세가 전국 최고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카페 1개당 인구수가 360명 정도로 서울의 674명, 부산의 863에 비해 절반 정도이고 전국에서도 가장 적다.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 특수성으로 그 차이를 메꾸기는 역부족이지 않을까? 2019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3년 내 폐업률도 62.8%로 전국 1위라고 한다. 차별화된 공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냉엄한 생존경쟁이 제주 카페 현장에서도 일어나고.. 2021. 10. 21.
제주살이 16 - 식당밥(후반부) 여행에서 식당은 주요 방문지이자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개별여행만 다니다 친구들과 여행사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아내는 강행군의 일정과 함께 식사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내 취향에 따른 음식을 고를 수 있는 자유,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긋한 여유.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1.별맛해장국 ↑서귀포 남원읍에 있다. 메뉴는 해장국 단 한 가지이고 오후 2시쯤이면 문을 닫는다. 아내와 대부분의 음식을 공통으로 좋아하지만 딱 세 가지는 예외다. 순댓국과 돼지국밥, 그리고 멕시코 음식인 따꼬는 예외다. 아내가 좋아하지 않는다. 해장국은 선별적이다. 식당에 따라 아내의 호불호가 갈린다. 남원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러 간 김에 이곳 해장국을 먹게 되었다. 아내도 좋.. 2021. 10. 20.
제주살이 15 - 집밥(후반부) 한 달 동안 제주살이를 마치고 돌아왔다. 공항의 문을 나서자 한파경보가 내린 서울의 냉랭한 공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감미로운 꿈에서 갑자기 깨어난 것처럼 뭔가 어색한 발걸음이 떼어졌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순간은 늘 그랬다. 마치 '지금 여기를 걷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는 느낌으로. 이번엔 한 달이라는 조금 더 긴 시간 때문인지 현실로 돌아온 첫 순간이 조금 더 낯설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여행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맛있는 과자를 아껴가며 먹듯 아직 따끈한 여행의 기억을 길게 늘여가며 곱씹어 보아야겠다. 여행의 전반부가 끝날 무렵 집밥과 식당밥과 카페에 대해 대강의 정리를 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이어진 같은 범주의 후반부도 정리해 본다. 매일 저녁 다른 음식을 만들어보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거의 .. 2021. 10. 19.
제주살이 14 - 대정 삼의사비(三義士碑) 추사 유배지 근처 대정읍 인성리에 「제주대정삼의사비」가 서있다. 1901년 '이재수의 난'(일명 신축교란)을 주도하다가 처형된 세 장두(이재수, 오대현, 강우백)를 기리는 비석이다. 비가 세워진 내력이 뒷면에 음각되어 있다. 아내와 나는 비문을 소리내어 꼼꼼히 읽어 보았다. 천주교인이어서인지 첫문장이 서늘하게 그리고 부끄럽게 다가왔다. "여기 세우는 이 비는 무릇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 1899년 제주에 포교를 시작한 천주교는 당시 국제적 세력이 우세했던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그 때까지 민간신앙에 의지해 살아왔던 도민의 정서를 무시한 데다 봉세관과 심지어 무뢰배들까지 합세하여 그 폐단이 심하였다. 신당의.. 2021. 10. 17.
제주살이 13 - 따라비오름과 머체왓숲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부부와 함께 따라비오름을 가기로 했다. 지난 번에 머체왓숲과 사려니숲을 걸은 부부였다. 그런데 전날부터 시작한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지만 바람도 있어 아무래도 오름을 오르는 건 무리로 생각되었다. 대신에 식사를 하고 창밖 풍경이 괜찮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는 게 좋겠다고 아내와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한 시간쯤 운전을 하고 우리 숙소에 도착한 부부는 예상과 달리 적극적이었다. "가야죠. 제주도에서 이 정도 비야 뭐··· 비옷 입고 가면 ··· "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다. 차가 없어 부부의 차에 동석을 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궃은 날씨를 무시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기가 저어했던 참이었다. 간단히 아점을 먹고 따라비오.. 2021. 10. 15.
제주살이 12 - 비오는 날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제주로 유배되었던 충암 김정(金淨)은 제주 날씨에 대해 글을 남겼다. "기후는 겨울철에도 때로는 덥고 여름에도 때론 서늘하여 변덕스럽고, 바람은 따뜻한 듯하면서도 사람의 옷 속으로 파고드는 품이 몹시도 날카롭다. 의복과 음식도 조절하기가 어려워 병이 나기 쉽다. 더군다나 구름과 안개가 항상 덮여 있어 갠 날이 적으며, 맹풍(盲風)과 궂은비가 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곤 해서 무덥고 축축하고 끈끈하며 담담하다." 김정이 경험한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고약스러워 보인다. 한 친구는 내가 제주도에 간다고 하자 '태풍이 없길 바란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태풍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다 보니 태풍만 발생하면 제주가 날씨 뉴스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날씨.. 2021. 10. 13.
제주살이 11 - 내 손자, 내 친구들 '육짓것'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 섬사람들이 육지 사람들의 못마땅한 행태나 그들이 가져온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육지 사람이라거나 육지 문화와는 어감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반대의 경우로 '섬것'이라는 말도 마찬가지겠다.) 제주 여행 전 아내와 일상 속 걱정, 불안, 불만, 원망 같은 구질구질한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까지를 '육짓것'으로 정리했다. 그것들 일체를 장롱 서랍 속에 넣어 두고 앞으로 한 달어치의 제주 여행만을 트렁크와 머릿속에 담아 가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실제로 제주에 와서 거의 그렇게 되었다. '육짓것'들을 까맣게 잊고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지냈다. 의도적으로 노력한 것이 아니라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이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주었.. 2021.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