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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63

서산·태안 돌아오기 3(끝) 해미순교성지에는 "생명의 책"이란 커다란 조형물이 있다. 2014년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에서 있었던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하신 말씀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교류가 빈번해지고 다양한 문화와 만남이 일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선 일반적인 의미로도 새겨 읽어볼 만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께 충실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이곳 성지에 함께 모인 여러분께 주님 안에서 한 형제로서 따뜻한 인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국 순교자들의 사랑의 증언은 비단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까지 축복과 은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많은 다양한 문화가 생겨난 이 광활한 대륙에서, 교회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대화와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증언하라.. 2022. 1. 19.
서산·태안 돌아오기 2 창호지에 노란 아침 햇살과 나뭇가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문을 여니 하늘이 활짝 개어 있었다. 9시에 흑임자 죽과 과일 등으로 구성된 아침 식사가 배달되었다. 식사를 하고 산책을 했다. 산책이라 했지만 숙소 내 전망 데크를 가보는 거라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거리였다. 바람은 어제에 비해 잔잔했고 햇빛이 짱짱하여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데크에서 갯벌을 바라보다 숙소로 돌아가 커피를 마시며 체크아웃 시간을 기다렸다.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를 보러 가야 했다. 체크아웃을 한 후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다는 직접 보아야 바다답다. 사진이나 기억만으로는 직접 대하는 일망무제의 바다에서 느껴지는 통쾌한 감정을 대체할 수 없다. 썰물로 바다가 멀리 물러가 넓어진 해변을 거닐며 아내와 고등.. 2022. 1. 18.
서산·태안 돌아오기 1 여행 전날 충남 지방에 눈과 함께 추위 소식이 있었다. 너무 많은 눈이 내리지 않았기를, 너무 춥지 않기를 바라며 출발을 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벗어나 개심사를 가다 보면 길 옆으로 옛 삼화목장을 지나게 된다. "1969년에 김종필 씨가 드넓은 산지를 목초지로 '개발'하겠다고 조선시대에 12진산(鎭山)의 하나였던 상왕산의 울창했던 숲을 모두 베어내고 외제 풀씨를 뿌려 심은 것이다."(한국문화유산답사회) 정치권력의 과잉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한때 이곳을 '김종필 목장'이라고 불렀다. 나무 한 그루 없이 굽이치는 넓은 언덕은 우리나라에선 확실히 보기 드문 풍경이다. 간밤에 내린 눈은 빛바랜 초지 여기저기에 희끗희끗 쌓여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세우고 문을 열자.. 2022. 1. 17.
제주살이 30 (끝) 제주 숙소 주인의 문자를 받았다. 주말에 거둘 귤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주인 부부가 오래 가꾸어온 수고를 알기에 그냥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여유롭고 감미로웠던 제주 한 달은 같은 느낌의 여운으로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16세기 조선의 문학가 백호 임제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저 동정호(洞庭湖) 7백 리 물도 이에 비하면 물 한잔 쏟아놓은 웅덩이와 다름없다" 고 외쳤다. 물론 중국의 호수가 아무리 넓어도 거칠 것 없는 일망무제의 바다에 견줄 바가 아니므로 당연한 표현이겠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큰 물의 상징으로 존재해온 동정호라는 상투적인 관념을 호기롭게 깨뜨려 버린 것이다. 다시 제주 바다와 산과 오름과 숲을,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 이.. 2021. 12. 11.
조금씩 엇나간 삼척여행 내가 계획한 여행이지만 막상 떠나 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가려고 했던 곳을 가지 못하거나, 계획에 없던 일을 하게 되거나, 찾아간 곳이 기대와 다르거나 등등. 이번 1박 2일의 짧은 삼척 여행은 시작부터가 그랬다. 애초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이었다. 두타산의 베틀바위와 그 일대를 돌아보려면 그래야 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았던 일이 생겨 출발이 4시간 정도 늦어졌다. 고속도로를 쉬지 않고 달렸지만 결국 산행은 할 수 없었다. 네비까지 잘못 설정하여 무릉계곡이 아닌 댓재 쪽으로 가는 실수까지 저지른 탓이다. 다시 차를 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추암(湫岩)으로 향했다. 원래 이튿날 일출을 보고 아침 산책을 하려던 일정을 당긴 것이다. 촛대바위로 가는 길에 작은 정자가 있다. 고려 공민왕 때.. 2021. 12. 1.
제주살이 29 - 올레길 10코스(2) 올레 10코스의 두 번째 걷기는 모슬포에서 시작하여 송악산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산방산을 정면에 두고 걷고자 했기 때문이다. 걷기 전 하모리의 영해식당에서 처음으로 몸국을 먹었다. 못내 궁금했던 음식이었다. 원래 몸국이 외지인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는 맛은 아니라는데, 이곳의 몸국은 구수하니 먹을만했다. 원래 몸국의 맛이 그런지 아니면 여행자들에 맞추어 조정된 맛인지 판단할 근거가 내겐 없다. 아무튼 괜찮은 맛이었다. 몸국은 공식(公食) 그 자체이다. 큰일에 돼지를 잡아 추렴할 때 다 함께 먹는 몸국은 돼지모자반탕이다. 단순한 국이 아니라 오래 끓인 진한 탕국이다. 돼지를 잡아 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다가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만든다. 잔칫집에서 가문잔치 전날,.. 2021. 11. 29.
제주살이 28 - 올레길 10코스(1) 올레길 8코스 다음에 9코스는 건너뛰고 10코스를 걸었다. 9코스는 길이는 6km로 짧으나 난이도가 상이어서 허리가 아픈 아내에게는 무리일 것 같았다. 10코스는 두 번에 나누어 걸었다. 처음에는 시계방향으로 두 번 째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화살표를 기준으로 말하면 먼저 파란색을 따라, 나중에는 주황색을 따라 걸은 것이다. 호두를 반으로 갈라 엎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범종이나 중절모 같기도 한 산방산은 높이 395미터로 다부져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빨래를 하던 설문대할망이 방망이로 한라산을 치는 실수를 저질러 한라산 봉우리가 떨어져 나온 것이 산방산이다. 또 다른 전설은 사슴사냥을 하던 사냥꾼이 실수로 화살을 옥황상제 엉덩이에 쏘아, 화가 난 옥황상제가 손에 잡히는 대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2021. 11. 28.
제주살이 27 - 올레길 8코스 모처럼 한라산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 맑은 날. 완만한 경사로 병풍처럼 좌우로 한껏 팔을 벌린 한라산은 친근하면서도 위엄이 있어 보였다. 올레길 8코스는 대포주상절리에서 중문해수욕장까지만 걸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르다 해안에 이르러 물과 만나 육각형 또는 사각형의 형상으로 굳어진 지형이다. 대포주상절리(지삿개바위)는 높이 30 ∼40m의 검은 바위 기둥들이 약 1km에 걸쳐 벌집처럼 붙어있다. 곧추선 바위와 푸른 바다, 하얀 파도가 장관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주상절리에서 중문으로 가는 길은 깔끔하게 가꾸어진 공원이다. 요트계류장도 산뜻해 보인다. 중문 롯데호텔 근처에 있는 카페 세렌디에서 베이글 샌드위치와 함께 한참을 쉬었다. 중문색달해변은 물이 깨끗하고 파도가 높아 서핑에 좋은 곳이다. 제주도에서.. 2021. 11. 26.
제주살이 26 - 올레길 7코스 7코스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출발하여 칠십리시공원을 지난다.시공원은 '市'공원이 아니라 '詩'공원이라고 한다. 공원 안에 서귀포를 주제로 한 시비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시비(詩碑)를 지나면 천지연 폭포를 전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가까이서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의 천지연폭포를 볼 수 있다. 삼매봉의 정상에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Canopus)을 바라볼 수 있는 팔각정 남성대가 있다.남극노인성은 그냥 노인성 또는 수성(壽星)이라고도 부르며 나라의 국운과 사람의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별로 알려져 있다. 이 별이 밝게 보이면 국운이 융성하고 전쟁이 사라지며, 이 별을 세 번 보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여, 조선시대에는 국가제사로 노인성제를 매년 춘분·추분에 두 번 지냈다.토정 이지함을 비롯한 조선의 선비들이 .. 2021.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