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한국463 청계천 걷기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가 말했다. "가장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루에 여덟 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계속 밥을 먹을 수도 없으며, 또 여덟 시간씩 술을 마실 수도 없으며, 섹스를 할 수도 없지요. 여덟 시간씩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이지요." 내가 여덟 시간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책 읽기와 걷기다. 물론 이 둘도 여덟 시간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할 수는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기는커녕 즐겁다. 포크너가 말한 일의 범주에 드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어디에 속하건 백수인 나와 .. 2022. 6. 12. 선유도에서 신선되기 각자 다른 곳에서 볼 일을 보고 당산역 근처에서 아내와 합류하여 점심을 했다. 날이 더워 음식 나오기 전에 맥주부터 주문을 했다. "낮술은 백수와 신선만이 할 수 있다." 은퇴한 후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흰소리 건 어쩌건 낮에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은 은퇴 전과 후의 확실한 구분이 된다. 낮술로 신선의 경지에(?) 이른 김에 식사를 마치고 신선이 노닌다는 이름을 가진 한강 선유도(仙遊島)로 갔다. 선유도는 조선시대까지는 섬이 아니었다. 안양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솟은 봉우리(仙遊峯)였다. 겸제 정선의 그림을 통해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우뚝한 봉우리 아래 작은 민가들이 숨은 듯 기대어 있고 번듯한 기와집도 한 채 보인다. 그 앞으로 빈 나룻배 두 척이 떠있고 한 척은 내를 건너 반대쪽에.. 2022. 6. 11. 색다른 서울숲 야니님과 아니카님 부부와 뚝섬역 근처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에 모주까지 한 잔 나누고 서울숲을 걸었다. 이미 수십 번쯤은 걸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서울숲이었지만 야니님은 전혀 새로운 곳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덕분에 서울숲에 나비정원과 식물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아내와는 한강변을 걷다가 성수대교 근처에서 서울숲으로 들어와 대각선 방향으로만 걸었다. 약간씩 우회를 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직선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 최단 거리를 택했던 것이다. 산책도 생활도 가끔씩은 익숙해서 편안한 방식에서 벗어나 일탈을 즐겨보기도 할 일이다. 사는 건 늘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서울숲을 나와 번잡한 대로를 걸어 성수동에 있는 카페 "onion"에 갔다. 서울숲을 걷는 날이면 빼놓지 .. 2022. 6. 3. 화사한 날의 마재 오전까지 전혀 계획에 없다가 아내와 갑자기 의기투합해서 나선 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마재. 위대한 학자 다산 정약용과 흑산도 유배 중에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그리고 약현, 약종의 4형제가 태어난 곳이다.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과 정정혜도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나는 "정약종 아구스티노", 아내는 정약종 부인인인 "유소사 체칠리아를 세례명으로 받았다. 코로나를 핑계로 성당에 나가지 않은지 오래된(사실은 그전부터 냉담자) '무늬만' 천주교 신자지만 그런 인연으로 마재는 늘 머릿속에 있어온 곳이다. 4명의 정씨 형제 중 맏형인 약현을 제외하곤 모두 천주교와 관련하여 유배를 살거나 죽음을 당하였다. 특히 정약종 집안의 내력은 놀랍다. 1801년 신유박해로 정약종과 아들 정철상이, 1839년 .. 2022. 6. 1. 다시 발밤발밤하다 지난 2년간 아내가 지하철 교통비로 지출한 금액은 2,500원이었다. 나도 비슷했다. 친구 모임은 한번도 하지 않았고 수영 강습과 다른 강좌 수강도 일체 중단하거나 영상수업으로 대체했다. 우리도 우리지만 그보다 혹시나 우리 때문에 손자들에게 코로나가 옮겨질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첫째 손자가 먼저 유치원에서 걸려와 온 식구들에게 퍼트렸다. 변종 코로나가 나오면서 증상이 이전보다 약해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딸아이네 식구들이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아내와 나는 음식을 만들어 아파트 문 앞에 갔다 놓았다. 처음 음식을 놓고 돌아설 땐 영문도 모르는 어린 손자들이 문 안쪽에서 병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에 콧날이 시큰하기도 했다. 아무튼 고생한 덕에 모두 슈퍼 항체를 보유하게 되었다고 하니 아내와.. 2022. 5. 16. 단원고4.16기억교실 조문을 하기 위해 안산엘 갔다. 고인의 나이 90세. 장례식장은 비통한 슬픔보다는 잔잔한 애도의 분위기였다. 그래도 고인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상주인 친구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황망하지 않고 회한을 남기지 않는 죽음이 어디 있으랴. 잊고 편히 보내드리라고 위로를 건네주었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 높게 날카롭게 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 아스라한 그 정수리에선 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 냉혹함으로 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고나 아아 절벽! -이형기, 「절벽」 - 조문을 마치고 나오니 길 건너 편에 "단원고4.16기억교실"이 있었다. 교실과 책상과 걸상과 칠판과 게시판과 사물함은 옮겨왔지만 이름 부르는 목소리와 재잘거림과 뛰어다님과 문 여닫는 소리는 사라진, 누구나 다가설 수밖에 없는 '절벽'.. 2022. 5. 15. 친구는 다 예쁘다 작년 가을에 이어 두 번째로 선재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한 달 넘게 만나지 못했던 손자친구들과 함께 해서 반가움이 컸다. 비가 내린 뒤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손자1호는 개의치않고 가볍게 해변을 달리고 물수제비를 뜨고 그네를 탔다. 귀를 간지럽힌 친구의 웃음소리가 먼바다로 퍼져나갔다. 손자친구와 코코코 게임과 가라사대를 했다. 코로나 전에 했던 게임이었다. 눈 깜빡거리지 않기와 엉덩이로 이름 쓰기 벌칙도 나누었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 Track : Ready To Nap - https://youtu.be/UZE2a9gTsDk 고기와 마시멜로를 구웠다. 어른들은 맥주를 마시고 친구는 뽀로로 쥬스를 마셨다. 불멍과 불꽃놀이 시간도 가졌다. 친구는 불멍의 의미를 궁금해.. 2022. 5. 1. 여기가 어딘가다 목련에 이어 벚꽃이 피더니 이내 흩날리듯 사라지고바람결에 묻어오는 라일락 향기와 함께 발길 닿는 공원 곳곳에 철쭉이 눈부시다.사람들이 옮겨 심고 가꾸었다 해도 꽃은 스스로 피어난 것이다.십일 넘어가는 꽃이 없다 하지만 저 맹렬함을 누가 덧없다 말할 수 있으랴. 짧아서 진하고 더 강렬한 꽃길을 아내와, 그리고 가끔은 마음을 나누는 이웃과 함께 걸었다.↓공원은 바삐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해찰을 부리는 곳이다. 더군다나 꽃이 있는 시공간임에랴 ······.↓한강변을 따라간 햇살이 좋은 날에는 윤슬이 반짝여 강물도 꽃이 된다. 아내와 가만히 앉아 그런 강과 오고 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도 그렇다. 서울숲의 튤립은 작년에 비해 성기게 심어져 있었다. 아쉬워하다가 듬성듬성 빈 공간이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 2022. 4. 29. 꽃구경하고 또 꽃구경하면서 구름처럼 피어나던 벚꽃이 어느새 화려하게 흩날린다. 길 위에도 하얗게 깔려있다. 올해 마지막 벚꽃놀이를 하자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 자주 가는 냉면집부터 들러 '식후경'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대기하는 사람들이 만든 줄이 너무 길었다. 발길을 돌려 근처 카페에서 케이크와 커피로 대신하려고 갔더니 이번엔 쉬는날이라는 안내판이 입장을 막는다. 어쩔 수 없이 출출함을 견디며 걷다가 공원 편의점에서 물과 커피를 사서 그늘에 앉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잎이 자욱하게 쏟아져 내렸다. 휴대폰에 담으려 했지만 매번 동작이 굼떠 꽃잎이 성긴 화면만 잡혔다. 미리 카메라 모드를 켜놓고 기다리니 이번엔 바람이 불지 않는다. 아내가 그냥 눈으로만 보라며 웃었다. *Music by 브금대통령 / Track : 꽃비 - http.. 2022. 4. 12.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