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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83

지난 여행기 - 2002발리3 45. 바롱댄스와 식당 "KU DE TA" 아침을 먹고 바롱댄스를 보기 위해 바뚜불란으로 향했다. 바롱댄스는 처음 발리를 여행했던 십여년 전에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다시 본 바롱댄스는 옛날만 못한 것 같았다. 장소도 예전과는 틀린 곳이었다. 춤의 내용도 머릿속의 기억과는 많이 달라진 듯 했다. 아내와 나의 기억이 과장이나 애곡된 것인지도 모른다. 종종 인상 깊었던 과거의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과장된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곤 하니까. 아니면 발리에서 여행자들이 볼 수 있는 춤의 대부분이 다분히 관광용이므로 10여년의 시간동안 다소 내용상의 변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힌두교는 현실적인 종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발리 힌두는 악의 존재를 인정한다. 흔히 말하듯이 바롱춤에도 악의 상징이 랑다와의 싸움이 .. 2017. 8. 11.
지난 여행기 - 2002발리2 44. 다시 짐바란 포구의 아침과 저녁 아침 잠이 없어지는 것은 나이가 들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아침 잠이 많은 편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예전만큼은 아니게 되었다. 예전에는 정말 아침 잠이 많았다. 내가 군입대를 할 때 어머니가 하신 가장 큰 걱정도 나의 아침잠이었다. “너 그러다 매일 아침 여섯시에 어떻게 일어날래?“ 어린 시절 나의 달콤한 아침 잠을 깨우는 사람은 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서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고 난 후에는 나를 깨우곤 하셨다. 특히 밤 사이에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내린 겨울 아침에는 반드시 나를 깨웠다. “일어나라. 기준이는 벌써 일어나서 집앞을 쓸고 있더라.” 그런 날은 으례 사전 예고 없이 별안간 방문을 활짝 열어 제.. 2017. 8. 11.
지난 여행기 - 2002발리1 2002년 10월12일 발리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202명이 숨졌다. 그중에는 한국인도 2명 있었다. 부상당한 사람도 수백명이었다. 아내와 발리 여행을 한 직후였기에 충격이 컸다. 더군다나 테러의 현장이었던 사리SARI 클럽은 여행 중 그 앞을 여러번 지나쳤었고 이전 여행에서는 직접 들어가 맥주를 마시기도 했던 곳이었다. 숨진 사람들 중에 호주인들이 가장 많았다.(88명) 떠나오기 전 우리가 묵었던 호텔 해변에서 호주인들이 거창한 집단 행사를 했던 터라 아내는 그들 중 누군가가 변을 당했을 거라며 몸을 떨었다. 이 여행기는 그 때 쓴 것이다. ======================================================================= 41. 발리를 위하여 영화 『박하.. 2017. 8. 10.
지난 여행기 - 2001발리7(끝) 39. 우붓으로 가는 길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뉴질랜드 부부들과도 기념 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와얀WAYAN의 차를 빌려 우붓으로 향했다. 대중 교통 사용의 원칙을 세웠지만 발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 중의 하나라는 암라푸라 AMLAPURA에서 른당 RENDANG까지의 도로를 달려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붓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이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갖가지 모양의 계단식논이 나타났다. 도중에 뿌뚱 PUTUNG에 있는 PONDOK HILLTOP RESORT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조망하였다. 산자락 끝에서부터 잇대어 온통 푸르기만한 바다와 더 멀리 누사펜디아 NUSA PENDIA 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운전을 하는 와얀은.. 2017. 8. 10.
지난 여행기 - 2001발리6 37. 어느 미국인의 생일 잔치 게녝 GENJEK은 함께 노래 부른다는 뜻으로 동부 발리의 전통 공연 양식이다. 옛날 롬복의 침략군을 물리친 뒤 있었던 승리의 축제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이가 태어났거나 결혼식 혹은 생일 등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공연을 하게 된다고 한다. 또는 여행객들의 요청이 있을 때 공연을 하는데, 신청한 사람은 3십만 루피아(약 33불정도)의 공연료를 지불해야 한다. 공연단원은 10명에서 15명 정도로 노래와 음악을 연주한다. 뽄독 바뚜르 인다의 주인 게데 GEDE와 그의 사촌 와얀 WAYAN도 공연단원이었다.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마을에 일이 있을 때 모여서 공연을 하는 것이 옛 우리 농촌의 농악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천국은 구리빛 근육의 건강한 노동과 신명나는 .. 2017. 8. 9.
지난 여행기 - 2001발리5 35. 발리의 글래디에이터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닭싸움 이야기로 시작된다. 점순이네 큰 수탉에게 주인공의 작은 닭은 번번히 면두를 쪼이어 붉은 피를 흘린다. 화가 난 주인공은 쌈닭에 고추장을 먹이면 기운이 뻗친다는 이야기를 믿고 고추장까지 먹여보지만 결과는 참패다. 물론 동백꽃은 주인공을 좋아하는 점순이의 사랑 이야기인지라 닭싸움은 자연스런 시골 풍경 중의 하나인 소품으로 등장한다. 그 때문에 주인공의 지게막대기에 점순이네 장닭이 맞아죽어도 그 정황이 끔찍하기보단 유머러스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발리의 닭싸움은 달랐다. 그것은 발리의 한 전통이긴 하지만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것이어서 비록 가축끼리지만 피가 섬뜩했고 살기가 느껴졌다. 아메드에서 돌아와 와얀 WAYAN과 함께 동네 사원 앞에서 상시로 열린다는.. 2017. 8. 9.
지난 여행기 - 2001발리4 33. "아름다운 언덕 위의 집" - 뽄독 바뚜르 인다 PONDOK BATUR INDAH 띠르따강가는 우선 1940년대에 암라푸라의 마지막 왕에 의해 만들어진 물의 궁전 WATER PALACE으로 알려져 있다. 물의 궁전은 안에는 여러 개의 POOL이 있고 그 중 몇 개에서는 아직도 수영을 할 수 있다. 주변 산의 계곡을 흐르는 물과 샘에서 솟아나는 물이 수영장에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바닥엔 수초가 자라있는 곳도 있지만 POOL 안의 물은 깨끗해 보였다. 아이들 몇 명이 발가벗은 채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정겨운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 방죽에서 같은 모습으로 물놀이를 해본 기억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개구쟁이 녀석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알몸으로 포즈까지 취해 준다. 물의 궁전을 끼고 있는.. 2017. 8. 8.
지난 여행기 - 2001발리3 31. 짠디다사CANDI DASA에 해변은 없다 오래 전 그러니까 딸아이가 국민학교 다닐 적 태안반도의 해수욕장을 찾은 적이 있다. 이름도 예쁜 꽃지 해수욕장이 기억에 남는다. 그 해변에서 바라본 황홀한 일몰. 바다도 하늘도 온통 붉은 빛이었다. 아내와 나는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공경에 뭉클한 감동으로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초 TV에서 국제행사를 위해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태안반도의 모습을 보았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뚫리고 영겁의 세월동안 이어져온 모래언덕은 숨막히는 콘크리트 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연이 만든 부드러운 곡선은 효율과 경제만 앞세운 논리 앞에 힘을 잃고 독불장군같은 직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TV는 신발조차 벗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바닷가 모래언덕을 보살.. 2017. 8. 8.
지난 여행기 - 2001발리2 29. 빠당바이의 밤 우리는 또삐 인 TOPI INN에서 발걸음을 돌려 PADABGBAI BEACH INN의 방갈로 하나를 십만루피아(11불)에 하룻밤 숙소로 정했다. 발리 전통 가옥 형태로 지어진 방갈로는 일층은 샤워시설과 의자가 있고 잠은 3개의 침대가 있는 이층에서 자게 되어 있었다. 외부 모습보다 내부는 다소 허술하였으나 하룻밤 자는 것인데 뭔 문제가 되랴. 비스꼬와 피터는 내 덕분에 좋은 곳에 오게되었으니 나는 3만루피아를 내라고 하고 자신들 둘이 나머지를 내었다. 우연한 만남이 잠자리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저녁은 해안도로변의 까페 꺼르띠 CAFE KERTI에서 했다. 바닷가이니 여러 가지 생선 튀김 바비큐 등을 시켰다. 나오는 음식마다 맛이 훌륭했다. 여럿이 여행을 하는 것은 적어도 식사를.. 2017.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