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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181

'드디어' 방콕에 가다 5 동남아에 갈 때마다 열대 과일을 많이 먹게 되지만 이번엔 주요 '미션' 중의 하나로 정했다. 특별히 '미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는 아내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유일한 열대과일 두리안에 대한 도전 의지를 새롭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초 인도네시아에 주재할 때 두리안을 처음 맛보았다. 사람들은 '과일의 왕'이라 칭송하며 두리안을 권했다. 처음 경험하는 진득한 식감에 고소하달까 구수하달까 달콤하달까 아무튼 미묘한 맛이었지만 훌륭했다. 아내는 두리안 특유의 냄새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 이후 아내가 싫어하는 과일을 혼자서 먹을 일 없고 망고나 망고스틴, 람부탄, 파파야로도 충분히 만족했기에 두리안은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여러 차례의 동남아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리안은 호텔 안으로 가져오.. 2022. 7. 5.
'드디어' 방콕에 가다 4 수영을 마치면 배가 출출해져 온다. 아니 출출해져 오면 수영을 마친다. 여행 중의 허기는 즐거움을 부르는 신호다. 엠콰티어, 센트럴 엠버시, 아이콘시암, 시암파라곤 같은 방콕의 쇼핑몰에는 거대한 푸드코트가 자리 잡고 있다. 고급 음식점도 있지만 길거리 음식을 모아놓은 곳이 많아 반드시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다. 구태여 멀리 '숨어 있는' 맛집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샤워를 하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개운함을 방콕의 더위로 다시 땀에 젖게 하기 싫어 오후 식사와 산책은 주로 쇼핑몰에서 했다. 손자와 한국에서 고생하는(?) 주변 사람을 떠올리며 작은 물품을 사는 소소한 재미도 곁들일 수 있었다. 방콕의 쇼핑몰은 자칫 길을 잃을 정도로 규모가 큰 데다 다리가 아프면 쉬어갈 카페도 의자도 많아 아내와 나에겐 완벽하.. 2022. 7. 4.
'드디어' 방콕에 가다 3 우리나라와 태국의 시차 2시간은 낮에 활동할 때는 크게 느낄 수 없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는 그 차이가 실감난다. 습관적으로 한국 시간 오전 6시 반쯤에 눈이 떠지면 태국은 4시 반의 꼭두새벽이라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상태다. 사위가 밝아질 때까지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가 산책을 나설 수밖에 없다. 방콕에서 아침 산책은 숙소를 기점으로 아침마다 동서남북 방향을 바꿔가며 걷는다. 공원이 있으면 공원으로 시장이 있으면 시장으로 향한다. 길을 따라 직선으로 걷기도 하고 원점 회귀를 위해 ㅁ자 코스를 그리며 걷기도 한다. 어느 코스나 한 시간 반 정도를 잡는다. 방콕의 도로는 보행자 친화적이지 않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자주 끊긴다. 그나마 폭이 넓은 인도에는 대개 노점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출근.. 2022. 7. 3.
'드디어' 방콕에 가다 2 매번 태국 여행이 그랬지만 이번 방콕 여행은 더욱 단순한 일정을 세웠다. 1. 아침 산책 2. 숙소 수영장에서 배고플 때까지 보내기 3. 식사 및 산책 4. 태국 과일 먹기 예전과 조금 다른 점은 전신 마사지 대신 발마사지만 받고, 과일 많이 먹어보기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리안을 친해지기로 했다. 두리안은 6∼7월이 제철인 과일이다. 나는 두리안의 찐득하고 크리미 한 맛과 식감에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하다. 90년 대 초 인도네시아에 살 적에 특유의 강렬한 냄새를 경험한 뒤로 두리안을 멀리 해왔다. 아내도 이번엔 다시 도전의 결의를 세웠다. 매일 아침, 산책을 마치고 조식 부페에서 간단히 먹고 나면 아내와 나는 수영장 죽돌이 죽순이가 되었다. 수영을 하고 몸을 말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2022. 7. 2.
'드디어' 방콕에 가다 1 회사 업무와 개인적인 가족 여행으로 수십 번은 들락거렸을 방콕에 대한 여행기를 쓰면서 제목에 '드디어'를 붙인 것은 말할 것 없이 코로나 때문이다. 2019년 12월에 베트남을 여행을 마지막으로 두문불출하였으니 출입국 심사대에 서 본 것이 2년 6개월 만이고, 태국은 5년 만이라 '드디어'라는 표현을 써도 과장은 아니겠다. 코로나가 느슨해졌다고 하지만 오고 가는 길이 여전히 예전보다 번거롭다. 먼저 태국 여행에 '타일랜드 패스'가 필요했다. 백신 영문접종 확인서와 의료비 일만 불을 보증하는 여행보험서 등의 몇 가지 사항을 사이트( https://tp.consular.go.th/)에 접속, 입력하니 한 나절만에 승인 QR코드가 메일로 왔다.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승인 여부를 기다려야 하는 절차고, 인터넷.. 2022. 7. 2.
태국 '워밍업' 태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태국 분위기에 젖어보기 위한 '워밍업'을 시작했다. 여러 차례 다녀와 익숙한 방콕이고, 호텔 수영장에서 뒹구는 단순 일정의 여행이라 특별히 준비랄 건 없지만 오래간만의 해외여행이니 이런저런 사전 이벤트를 만들면서 설렘을 키우고 싶었다. 연남동 철길을 걷고 난 후 찾아간 태국 식당 "소이연남"이 그 시작이었다. 소이(soi)는 골목길을 뜻하는 태국 말이다. 소고기 쌀국수와 뽀삐아, 그리고 싱하비어를 주문했다. 이름난 식당이니만큼 맛은 틀림없었다. 태국을 생각하면 못 먹을 가격이지만 여긴 한국이니 감수해야 할 노릇이었다. 같은 쌀국수지만 태국식과 베트남식은 색깔부터 다르다. 태국 쌀국수는 육수가 진하고 향이 강하다. 면 굵기도 여러가지고 무엇보다 국수에 올리는(들어가는) 고명 - 돼지.. 2022. 6. 7.
길고 짧은 소설 속 "방콕" 우연히 제목만 보고 고르는 책이 있다. 김기창의 소설『방콕』이 그랬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다른 책들 사이에 "방콕"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와 꺼내 들었다. (제임스 셜터의 단편 소설 「방콕」은 장편『방콕』속에 인용되어 있어 알게 되었다.) 방콕에 사는 지인이 문자를 보내준 날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격리도 없어졌으니 방콕에 한번 오시죠?" 하지만 막상 알아보니 예전처럼 장기간의 격리만 없어졌을 뿐 아직도 타일랜드 패스를 발급받는 따위의 몇 가지 성가신 절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창때와 비교하면 요즈음은 '껌' 수준이니 불평하지 마시고." 지인은 절차가 보이는 것만큼 번거롭지 않다고 나의 '여행 근육'을(?) 자극했다. 소설『방콕』에는 "망고 디저트 같은 달콤함과 썬 베드 위 안락함"을 주.. 2022. 4. 27.
태국 맛 느껴보기 윗사람과 동행하는 출장은 힘들다. 해외 출장은, 더군다나 그가 음식에 까탈스러운 입맛의 소유자라면, 더욱 그렇다. 오직 한식만을 고집하는 극도로 입이 짧은 직장 상사가 있었다. 왜 그런지 비행기 기내식은 종류를 불문하고 먹지 않고 대신 과일이나 라면을 달래서 먹을 정도였다. 걸귀의 식성을 타고나 사람이 먹는 거라면 원효대사의 해골물도 개의치 않을 나로서는 그와 함께 하는 출장이 상하관계를 떠나서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상대방은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깨작거리는데 나 혼자서 왕성한 식욕을 보이기는 좀 '거시기'하지 않은가.한 번은 태국에서 현지 손님들과 골프를 친 후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훌륭한 음식들이 나왔지만 '애석하게도' 태국식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태국 음식에서 나는 향.. 2022. 3. 30.
떠남은 축복이고 축제 그래도 그대는 떠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처럼 집안 단속을 하고 문을 잠갔나 확인하고 손때 묻은 세간살이 가득 찬 정든 집을 등 뒤로 남겨놓은 채 손가방만 하나 들고 결연히 떠나서 새 집을 찾는다 언젠가 그 집을 가득 채우고 다시 비어놓은 채 뒤돌아보며 집을 떠날 그대여 몇 번이고 망설이며 떠났다가 소리없이 돌아와 혼자서 다시 떠나는 그대여 --김광규, 「다시 떠나는 그대」- '다시 떠나는 그대여'라는 말이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처럼 새삼 정겹다. 언젠가 아내와 딸아이와 다녀온, 아유타야며 후아힌이며 파타야며 하는 곳으로 그냥 가볍게 떠나고 싶다. 인생은 늘 떠나는 것이라는, 진지한 그러나 다소 진부해진 의미는 잠시 접어두어도 좋겠다. 이십 년이 흐른 후 우리가 이룬 일들보다 하지 못한 일들로 더 깊.. 2021.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