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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262

영화 『어톤먼트』 한 영상 강좌에서 그 영화(소설) 『어톤먼트(ATTONMENT)』에 대한 감상문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영화 속 최고의 피해자이자 주인공인 "로비"의 입장에서 짧게 적어 보았다. ------------------------------------------------------------------------------------------ “이 거짓말쟁이들! 거짓말쟁이들!” 어머니는 내가 압송되어 가는 차를 두드리며 절규했다. 나는 수갑에 묶여 어떤 위로의 몸짓도 어머니에게 전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절절한 외침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그렇게 영문도 모르는 채 강간범이 되었다. 나는 권력과 부를 가진 집안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자식이었을 뿐이고 현장 부재 증명을 위한 나의 설명과 변명은 무력했.. 2021. 2. 17.
시대의 이야기꾼, 별이 되다 나는 내가 직접 전령사가 되고 싶었다. 한 손에는 만고강산을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그리고 거리의 아우성을 함께 몰아서 치는 징을 들고 또 한 손엔 바람찬 산마루턱에 봉화를 당길 횃불을 들고 어기차게 달리는 옛이야기의 주인공 말이다. 담아, 우리 집안이 본래 어떤 집안인 줄 아느냐? 우리 집안은 비록 화려하진 못했으나 한없는 이야기꾼의 집안이었음을 너희들에게 상기시키고 싶구나. (···) 한겨울 가루눈이 지향없이 내리는 깊은 밤 , 주린 속은 쓰리고 옛이야기는 달리고 화로의 불길마저 시들어가는 밤이면 울타리 너머 수수밭을 달리는 바람소리가 유난히 스산했다. 이럴 때면 할머니는 백두산 준령을 넘나드는 독립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저 바람소리는 독립군의 말 달리는 소리라고. 왜놈 병정을 쥐 잡듯 하고 묏돼지 .. 2021. 2. 16.
울지 마라 한 미얀마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올해 한국 대학 시험에 합격을 했다. 3월 입학을 앞두고 학생 비자로 갱신하기 위해 미얀마로 귀국을 했다. 미얀마 입국 후 양곤에서 코로나 방역 자가격리를 마치고 비자를 신청하여 2월 초에 발급이 예정되어 있었다. 양곤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집에는 빡빡한 일정 상 가보지 못했다. (잘 모르긴 하지만 항공료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발급을 받는 즉시 한국으로 와야 (또다시 보름 간의 격리를 한 후) 대학 입학 수속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뒤이어 모든 공항이 5월 말까지 폐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애가 탄 그는 태국으로 육로 이동을 한 후 한국행 비행기를 탈까 했지만 그것.. 2021. 2. 4.
춤추는 은하 아침에 책을 읽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탐스러운 눈꽃 송이가 허공에 가득하다. 반가운 소식이 온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베란다로 나갔다. 어느새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운동장엔 발자국을 찍으며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눈이 만들어준 평온한 천진난만 속으로 세상의 소란도 파묻혔으면 싶다. 오후부터는 다시 강한 바람에 추위도 따라온다고 한다. 창밖에 포근한 융단 깔리는 느낌 있어 눈 부비며 베란다로 나간다. 흰 눈이 8층 아래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건너편 축대를 한 뼘 가까이 돋우고, 흥이 남아 공중에 눈송이를 날리고 있다. 마당 가득 하얗게 살구꽃 흩날리는 아침 정선군 민박집이 8층 높이로 올라! 새 꽃밭을 찾아낸 벌들이 8자형 그리며 춤추듯 눈송이들이 느슨한 돌개바람 타고 타원을 그리며 춤.. 2021. 1. 28.
다갈빛 도토리묵 한모 도토리묵은 당연히 도토리로 만든다. 하지만 학술적으로 도토리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종은 없다. 참나무과 중에서 참나무속, 즉 상수리 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등을 통틀어 사람들은 도토리나무라고 한다. 도토리와 상수리는 모양만 약간 다를 뿐 결국 도토리지만 구별해서 부르기도 한다. 어릴 적엔 원기둥처럼 길쭉한 것을 도토리,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을 상수리라고 불렀다. 어른들이 쓰는 성냥개비를 반으로 부러뜨려 도토리나 상수리 뒤에 박아 팽이를 만들었는데, 방바닥에서 손가락으로 돌리면 도토리는 금세 쓰러지는 반면 상수리는 오래 돌았다. 이정록 시인은 글 쓰는 사람답게 좀 더 재미있게 도토리와 상수리를 구분했다. "드러누워 배꼽에 얹어놓고 흔들었을 때 굴러 떨어지면 상수리, 잘 박.. 2021. 1. 19.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THE MART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느 날 해고 통지 문자가 발송되었다. 일괄 해고 뒤 외주 용역 업체와 계약하려는 회사 측의 의도였다. 화려한 말포장을 하면 노동 시장 유연화에 기댄 경영 합리화쯤 될 것이다. 몇 해 전 방영되었던 비슷한 내용의 TV드라마 『송곳』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합리성을 요구하는 모든 조직은 비합리적 인간성에 기생한다." 노동자들은 반발하며 노조를 결성한다. 회사는 '재고관리'를 하는 사무적 태도로 회유와 탄압을 시작한다. 농성장에 전기 공급을 끊거나 대체인력을 투업하고, 손해 배상 청구를 하고, 용역 폭력배들을 동원하는······. 왜 이런 '비합리적 합리화'가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 아니 반복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21. 1. 16.
먼저 손을 씻고 어느 날 손자친구와 놀다가 찍은 사진이다.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 마스크 없이 투명한 허공으로 오르며 깔깔거리던 웃음소리. 사진만으로 숨통이 트일 것 같은, 저런 날이 언제 있었나 싶다.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 함민복, 「반성」 - 지난 일 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는 코로나만큼이나 종교 단체 때문에 고통을 받은 것 같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일터에서 떠나고 있는데, 그들만 예외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신이 나 같은 냉담자의 구원을 위해서도 존재한다면, 예배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먼저 자신의 '손부터 씻는' 겸손함으로 세상에 다가서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마태오복음에 나온 말씀을 나는 과문한 .. 2021. 1. 15.
코로나의 '선물' 새해 들어 처음으로 한강 변을 걸었다. 추워진 날씨에 움추려 있다가 까짓거 하는 마음으로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보통 때와는 달리 강변 길은 텅 비어 있었다. 눈 때문인지 자전거와 전동휠 진입을 통제하여서 적막하기까지 했다.달리기와 걷기를 반복했다. 휴대전화의 앱은 13,151걸음에 9.21km를 걸었다고 알려주었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 (만경인종멸 모든 길엔 인적도 끊였는데)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강에 배 띄우고)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눈 오는 찬 강에서 홀로 낚시 하네) -유종원( 柳宗元)의 「강설(江雪)」- 코로나는 분명 전대미문의 고통스런 상황을 가져다 주었지만 개인적으론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했다... 2021. 1. 9.
어떤 맨유 팬에 관한 기억 2019년 12월 아내와 베트남 호찌민을 여행하던 중 우연히 한 맨유 팬을 만났다. 잠시 쉬면서 맥주나 한잔 할까 하고 들어간 호텔 라운지에서였다. 반쯤 남은 위스키병과 술잔을 앞 탁자에 놓은 채로 그는 좀 취해 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이모부처럼 개구진 인상이었다. 가벼운 눈인사로 일별을 나누자 그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영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것으로 끝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가 또 물었다. "축구를 좋아하느냐?" 그렇다고 하자 이번에는 EPL(England Premier League)에서 어느 팀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예전에는 박지성이 있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했고..." 내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맞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 2021.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