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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262

나의 수타사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이나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 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바치고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 긴 긴 장마 -김사인, 「장마」- 수타사는 강원도 홍천에 있다. 공작산 아래 수타계곡의 깊은 곳에 위치한 조용한 절이다. 아내가 결혼 전 근무하던 학교가 그곳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인지 난 수타사 하면 그 시절의 아내를 떠올린다. 어제 저녁엔 지난 앨범에서 교정 화단에 선 앳된 모습의 아내를 보.. 2020. 7. 14.
영화『기쁜 우리 젊은 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우리나라 옛 영화를 유튜브에 공개 중이다. ( 한국고전영화 Korean Classic Film : https://www.youtube.com/user/KoreanFilm ) 어린 시절 천막극장 가마니 좌석에 앉아 콧날 시큰한 울음을 꾸역꾸역 참으며 보았던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에서부터 학창시절과 청년기를 보냈던 7080의 영화까지 대략 190 편의 영화가 올라있다. 지나간 영화는 추억의 보고이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영화는 첨단의(그러나 자주 접할 수 없던) 볼거리였고 프로레슬러 김일의 박치기와 함께 아이들의 대화 속에 자주 오르내리던 주제였던 것이다. 리마스터링된 영화는 영화 자체는 물론, 영화를 보던 시절과 영화 속 옛 풍경까지 아내와 이야깃.. 2020. 7. 8.
2020년 6월의 식탁 어떤 밥을 어떻게 먹느냐는 어떤 생을 어떻게 영위하고 있는가와 같다. 밥이 재화의 굴레에 갇히고 함께 둘러앉는 밥상머리의 온기에서 멀어질 때 생은 유효기간에 임박한 편의점 도시락을 허겁지겁 삼키는 행위처럼 위태로워진다. 텔레비젼과 인터넷 속에 밥의 정보는 넘치지만 그 넘침을 반성의 눈으로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6월에도 3대가 함께 하는 일요일 저녁식사를 가졌다. 코로나로 시작된 우리 가족의 이 의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재료를 사고 가다듬어 음식을 만드는, 식기에 담아 밥상 위에 올리는, 그리고 마침내 먹는 일까지, 소박한 매 과정마다 흥겨운 수다와 싱싱한 기운이 맑은 샘물처럼 흘러나온다.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유순한 눈빛으로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자는 시인의 말.. 2020. 7. 2.
누란의 바람 서역(西域)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넓게는 서부 아시아와 인도를 포함하고 좁게는 감숙성의 도시 돈황(敦煌)과 신장 위구르자치구역을 아우른다. 옛날 동서교역의 통로였던 실크로드의 동과 서가 만나는 접경이고, 이름만으로 험난함이 느껴지는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그리고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을 품은 지역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곳이기도 하다. 나 역시 당장의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텔레비젼에서 이 지역이 나올 때면 관심을 가지고 보곤 했다. 최근에 출간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은 이 지역을 다루고 있다. 직접 가기에 멀고 번잡한 지역일수록 책으로 하는 간접 여행의 효용성은 두드러진다. 더군다나 그것이 명 문장가의 글과 함께 하는 여행.. 2020. 6. 30.
『철도원 삼대』 황석영의 새 소설 『철도원 삼대』는 제목 그대로 삼대에 걸쳐 철도원으로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이다. 해고 노동자 이진오는 아파트 십육층 높이의 공장 굴뚝에 올라 텐트를 치고 고공농성 중이다. "세상이 변할까? 점점 더 나빠지구 있잖아." "살아있으니까 꿈틀거려보는 거지. 그러다보면 아주 쬐금씩 달라지긴 하겠지." 이진오는 텐트 자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두 오늘 살아있으니 할 건 해야지."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 2020. 6. 29.
부침개가 익어가는 오후 아침부터 장마비가 내렸다. 비오는 날과 전. 공식처럼 된 날씨와 음식의 조합이다. 문득 전과 부침개의 차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전(煎)은 재료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밀가루와 달걀물을 씌워 지진 것을 말한다. 굴전·새우전·버섯전·고추전·호박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부침개는 재료의 형태를 무시하고 잘게 썰어 밀가루와 함께 반죽한 뒤 지진 것이다. 애호박을 채썰어 만든 호박부침개나 배추김치를 잘게 썰어 만든 김치부침개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전과 부침개를 통틀어 ‘지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사전적인 구분일뿐 실제로는 전과 부침개는 혼용되어 쓰이는 것 같다. 냉장고 속에서 부침개 재료를 찾아보니 오이소박이를 만들고 남은 부추가 있었다. 여기에 건새우, 청양고추, 다진 .. 2020. 6. 24.
"You can't never let anything happen to him." DORY : It's all right. It'll be okay. MARLIN : No. I promised him I'd never let anything happen to him. DORY : Huh. That's funny thing to promise. MARLIN : What? DORY : Well, you can't never let anything happen to him. Then nothing would ever happen to him. Not much fun for little Harpo. (니모에게 아무 일도 안 생기게 할 수는 없어. 또 아무 일도 안 생기면 그리 재미 없잖아.) 아내와 옛 영화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를 봤다. 아내는 이미 극장 개봉 때 딸아.. 2020. 6. 24.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충격, 황당, 섬찟함. 그리고 안타깝고 허망한 여운·대북 전단 살포 문제야 어차피 내다 건 궁색한 핑계일테고.뭐지? 왜 그런 거지?복잡한 저들의 대내외적 계산법이 있을 테지만 그게 무엇이든 이 사진의 이유는 될 수 없겠다. 아무리 결과와 실리가 외교의 핵심이고 통일이란 대의 쯤이야 '고답적 지당함'으로 무시하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는 있었어야 할 일이다.아래 시가 쓰여진 이후 60년 동안 우리는 얼마만큼 달라져 있는 것인지······.''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을 피하고,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지 않기 위해서 인내 이외에 또 어떤 지혜가 필요한 것인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2020. 6. 19.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고 박완서의 소설 제목이다. 김현승의 시 「눈물」에서 따온 것으로 의미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한다. 소설 줄거리를 소설 속 표현대로 요약하면 이렇다. 젊은이들이 제 몸에다 불을 붙여 횃불을 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깜깜한 80년대. 공부밖에 모르던 아들이 시위에 나섰다가 '그놈의 쇠파이프'에 목숨을 잃었다. 아들은 백만학도의 애도 속에 열사가 되었다. 생때같은 아들이 하루아침에 간 데 없어진 끔찍한 아픔 속에서 어머니는 될 수 있는 대로 남들 한테는 예전처럼 굴려고 애를 쓴다.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보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민가협 같은 집단적인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마음 속으론 세.. 2020.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