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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63

잘 먹고 잘 살자 44 -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봄이다 봄을 느끼게 하는 음식? 내 기억 속엔 단연 냉이국이다. 봄이면 종일 들로 산으로 쏘다니다 해가 뉘엿해서야 대문을 열고 들어서던 내 어린 시절, 개구장이의 후각으로도 감별해 낼 수 있었던 진한 냉이된장국 냄새. 온 집안에 퍼지던 그 냄새는 바쁜 들일 중에도 짬을 내어 한 소쿠리 가득 냉이를 캐오시던 어머니의 부지런함으로 가능했던 향기였다. 고소한 내음이 입안에 가득하던 냉이무침은 또 어떠했던가! 삼십여 년 전의 결혼 초기까지만 해도 아내는 발품을 팔아 어느 가게에선가 향이 짙은 냉이를 사오곤 했었다. 그런데 이젠 도시에서 그런 냉이를 만날 수 없다. 향이 사라진 '모양만 냉이'인 냉이는 더 이상 봄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내와 내가 봄 음식으로 꼽는 것은 을지로 입구에 있는 식당 「.. 2017. 3. 21.
발밤발밤19 - 한양도성길 한양도성길을 걸었다.도성길은 흥인지문구간, 낙산구간, 백악구간, 인왕산구간, 숭례문구간, 남산구간의 6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실제 걷기에 구간은 큰 의미는 없다. 아무데서나 시작하여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된다. 총 길이가 18.6km이라 처음엔 하루에 걸어버릴까 생각하다가 욕심을 줄이고 3회로 나누어 걸었다.덕분에 한결 편안하고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며 걸을 수 있었다.입춘이 지났다지만 백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남산 구간에는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었다.(문득 드는 생각 - 입춘은 왜 '入春'이라 쓰지 않고 '立春'이라 쓰는 걸까?'봄에 들어가는 날'이 아니고 '봄을 세우는 날'? 혹은 '봄이 서는 날'? 어떤 뜻일까? 궁금해진다)김구선생님의 안타까운 사연이 서린 경교장에 들러보았다.선생님께서 안두희의.. 2017. 2. 17.
잘 먹고 잘 살자 43 - 성수동 카페 "ONION" 성수동은 이런저런 작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최근 홍대나 연남동, 혹은 건대입구역 먹자골목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비싼 임대료에 밀린 상권이 대체 지역을 모색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영향 때문인지 새로운 상점과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카페 ONION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70년대에 지어진 공장을 개조한 곳이라고 한다. 가능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놓아서 허술해 보이면서도 널찍하고 편안하고 아기자기해 보였다.카페 ONION 건축에 대해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우리는 공간을 탐색하던 중, 과거의 구조 속에서 새것이 줄 수 없는 가치를 발견했다. 바닥에 묻은 페인트 자국, 덧대어진 벽돌 하나하나가 세월을 기억하는 훌륭한 소재였다. 우리.. 2016. 11. 11.
발밤발밤18 - 속리산 산행 광화문집회 뒷날 아침 속리산으로 향했다. 충북의 법주사를 통해 문장대에 오르는 길을 따르지 않고 경상도 상주 화북을 통해 올랐다. 문장대에서 신선대와 속리산의 정상인 천황봉을 거쳐 법주사쪽으로 내려왔다. 능선에는 이미 낙엽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였지만 바람은 부드러웠다. 계곡의 물소리는 맑고 단풍은 절정으로 고왔다. 최치원이 헌강왕12년(886) 법주사 일대를 둘러보고 지었다는 시에 속리산이 나온다.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으나 (道不遠人)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人遠道)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으나 (山非俗離) 세속은 산을 떠난다 (俗離山) 산을 떠나는 세속. 전대미문 · 미증유 · 상상초월의 추문이 날마다 드러나는 요즈음 세상에 어울리는 이름의 산이 아닐까?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 벼랑에 오르.. 2016. 11. 2.
발밤발밤17 - 서울 둘레길 1코스 고은의 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누님께서 더욱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을이 왔습니다 - 「사치」 부분 - 가을이 와서 누님이 더 아름다워진 것도 아니고 누님처럼 아름다운 가을이 온 것도 아니고 뭐야? 누님이 더욱 아름다워서 가을이 왔다고? 가을이 가까워지면 떠오르는 시인의 난해하면서도 절묘한 표현이다. 올해 실제의 가을은 시만큼이나 난해한 황당함으로 왔다. 이제까지는 수그러들 것 같지 않은 무더위가 어딘가 느슨해지면서 끈적하던 습기도 살짝 말라가고 아침 저녁으로 창문을 열고 닫을 때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어제와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올 더위도 끝났군' 하며 가을을 예감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기록적인 찜통의 더위가 8월 하순에도 전혀 물러서 기세가 아니었다. 어떤 예감도 불가능하게 만.. 2016. 8. 28.
발밤발밤16 - 경북 청도 청도도, 청도가 고향인 친구도 오랜간만이다. 자상하게? 역마다 서는 무궁화호를 타고도 4시간만 달리면 가능한 일이었는데. 청도역을 나오면 추어탕(鰍魚湯) 식당이 줄지어 있는 이른바 "추어탕 거리"가 있다. 맛은 대동소이하다지만 오래 전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들렸던 의성식당으로 갔다. 규모가 좀 커졌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고마웠다. 맛도 기억 속의 맛 그대로였다. 추어탕은 조리 방법에 따라 서울식과 남도식이 다르다. 또 남도식은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뉜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살만 으깨어 넣고 남도식은 미꾸라지를 뼈째 갈아넣는다고 한다. 전라도식엔 들깨가루가 들어가 걸쭉하지만 경상도식은 맑은 국에 가까워 덜 걸쭉하다. 의성식당은 말할 것도 없이 경상도식 추어탕을 낸다. 된장과 얼갈이배추가 어우러.. 2016. 8. 9.
발밤발밤15 - 용산 일대 복음서는 예수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의 좌우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려준다.마태오는 그들을 강도들이라 했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그들의 이름이나 정체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여러 정황으로 볼 때 예수처럼 그들도 정치범이었을 거라는 추측만 있다.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앞둔 같은 처치이면서도 그들은 예수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모욕을 주었다고 복음서는 전한다. 루카복음서는 좀 더 자세하다. 둘 중의 하나가 예수에게 건넨 말을 기록한 것이다."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김동리는 그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에서 이 부분을 소설가다운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소설 속에서 예수에게 말을 건넨 사람의 이름은 사반이었다. 그는 로마제국에 폭력으로 저항한 혈맹단(血盟團)이라는비밀결사의 지도자.. 2016. 6. 9.
발밤발밤14 - 예쁜 성당, 원효로성당 내가 만난 가장 예쁜 성당. 바로 원효로성당. 1902년에 완공된 아담한 성당이다. 성당의 벽은 붉은 벽돌로, 기둥과 창문의 테두리는 옅은 회색 벽돌로 지어져 두 색의 조화가 차분하고 따뜻하다. 단순한 구조의 성당 내부는 밝고 정갈하다. 편안함 속에 엄숙함이 스며 있어 무릎을 꿇고 무언가 갈구하고 싶어지는 곳이다. 원효로성당은 옛 용산신학교의 부속성당이었다. 1902년부터 1958년까지 이 성당 안에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가 학교가 혜화동의 카톨릭 신학대학으로 이전하면서 그리로 모셔갔다고 한다. 성당은 성심수녀회 사무실, 성심여고, 성심 중학교 등과 함께 인접하여 있다. 70년대 후반 대학생이었던 아내와 나는 겨울방학 중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학교 주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흰눈학교"라는 .. 2016. 5. 9.
발밤발밤13 - 이태원 부근 이태원 하면 우선 길거리를 오고가는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인종의 용광로' 지역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음식이 따르기 마련이니 또한 이태원은 다양한 국적의 먹을 거리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주재로 인해 오랫동안 이태원을 가보지 못했다. 이번 연휴 첫날 근 10년여 만에 아내와 이태원을 찾았다. 이태원역 근처 쟈니덤플링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미 인터넷에서 '검증'된 곳이다. 메뉴도 검증된 것을 선택했다. 찐만두와 군만두의 특성을 반반씩 지닌 '반달'과 홍합만두국. 추가로 주문한 고기를 넣지 않고 부추향이 강한 군만두도 나쁘지 않았다. 식사 후 특별한 목적지 없이 이태원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이태원의 국제적 분위기는 이전 보다 훨씬 강.. 2016.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