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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63

발밤발밤12 - 카톨릭 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예비신자 시절 아내와 나에게 교리 수업을 해주셨던 은사 수녀님을 작년 12월에 찾아뵈었을 때 수녀님께서 위 사진 속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란 책을 선물로 주셨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취미를 염두에 두신 것이다. 새해 들어 아내와 나는 그 책을 참고로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2백여 쪽의 책 속에 천주교의 성지는 전국에 걸쳐 있었다. 다 돌아보자면 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게다가 가급적 대중교통과 도보를 이용하기로 했으니 더 그럴 것 같았다. 불편함이 따르겠지만 '속도전'으로 돌아볼 이유는 없겠다. 순례의 첫 장소는 "카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으로 잡았다. 학교 안에 있는 관계로 외부인은 방학 중에만 방문이 허락된다고 하여 제일 먼저 가게 되었다. 그때가 지난 1월이었으니 늦은 여행기다. 1.. 2016. 5. 6.
화양연화의 밀양 재약산 딸아이가 산후 조리 때문에 한달 정도의 예정으로 집에 와 있는 중이다. 밤낮으로 수발을 들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손자 녀석이지만 가끔씩은 긴 잠에 빠지면서 우리에게 한가한 저녁시간을 선물처럼 주기도 한다. (그 깊은 적막과 한가로움이라니!) 오래간만에 아내와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옛' 가족 셋이 한 자리에 앉아 볼 수 있는 시간. 아기가 있으니 그럴 때 화제는 종종 딸아이의 어린 시절에 집중된다. 딸아이를 키우던 당시와 지금 손자와 같은 점과 다른 점 비교도 해보고, 평상시에는 그렇게 싫던 회사 야간 숙직이 밤마다 울어대는 어린 딸아이 때문에 은근히 반갑고 기다려지기까지 했던 그 시절 나의 비겁한 이기심도 고백하고 (이미 오래 전에 아내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받았지만^^) '공갈젖꼭지'를 물자 울음.. 2016. 4. 8.
발밤발밤11 - 샌디에고에서 대천까지 샌디에고에서 8년 가까이 생활하는 동안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종교 - 천주교를 갖게 된 일이다. 극단의 무신론자였던 내게 어떤 극적인 전환점이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을 가기 전부터 아내와 종교에 대해 가끔씩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이국에서의 생활이 그런 논의에 좀 더 빠른 마침표를 찍게 해주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불교에 관심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천주교의 선택은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가까운 이웃이 소개를 했고 그래서 일단 한번 가본 것이 시작이었다. 지루.따분.엄숙.근엄.진지 등의 단어들로 예상되던 교리 수업. 게다가 일주일에 한번이라지만 6개월씩이라니! 수업의 첫날 성당으로 가는 차안에서 아내에게 왠지 모를 쑥스러움과 불안감(?)에 나는 투정을 부리는 아이 같은 말을 여.. 2016. 1. 10.
북한산 송년 산행 대학 동기들과 매년 하는 송년 산행. 올해는 서울에 모여 북한산을 올랐다. 토요일 오후의 산행인지라 우이동 도선사입구까지 차로 이동하고, 깔딱고개 - 백운산장을 경유하여 정상인 백운대로 오르는 최단 경로를 잡았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인수봉의 거대한 모습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낙옆이 떨어진 숲은 늦가을을 지나 벌써 겨울의 정취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백운대에 오른 것은 근 10년만이다. 바윗길을 오르다 남쪽을 바라보니 첩첩이 겹쳐진 산능선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아스라히 굽이쳐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의 진산다운 깊은 맛의 풍경이었다. 대전에서 온 백운대 초행의 친구는 가뿐 숨과 탄성을 반복하여 뿜어냈다. 뜻밖에 중국인들이 많았다. 예전엔 볼 수 없던 광경이지만 요즈음 세태에 비추어 이해.. 2015. 11. 25.
발밤발밤10 - 서울 자문밖 부암동2 올 가을은 자문밖으로 발걸음이 잦다. 10월 마지막 날 북한산에 오르기 위해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를 넘었다. 오래간만에 친구 부부들과 동행을 했다. 절정이리라 기대했던 단풍은 아직 멀어 보였고 어떤 것들은 물들기도 전에 말라가고 있었다. 먼지가 풀석이는 산길에는 나뭇잎 마르는 냄새가 얼핏얼핏 풍겨왔다. 친구는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더없이 맑은 하늘에 바람은 잔잔했다. 청신한 느낌의 공기는 산행에는 그만이었다. 올라갈 땐 보현봉을 보며 걷고 내려올 땐 평창동 일대를 보며 걸었다. 옛 친구들과 만남은 세월과 사회생활이 남긴 각질의 외피를 풀어놓게 된다. 무장해제의 시간.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커진다. 거기에 부암동의 식당 "소소한풍경"의 음식은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산행을 다녀온 며칠 .. 2015. 11. 7.
발밤발밤 9 - 서울 자문밖 부암동 자문밖은 구기동, 부암동, 신영동, 평창동, 홍지동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지명으로 과거에 자하문(창의문) 근처에서 거주하건 사람들이 자하문 밖을 가리킬 때 '자문밖'이라는 줄임말을 사용했던데서 기인한다. 지금은 인왕산과 북악산, 그리고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 등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되었다. 윤동주문학관은 정확히 자문밖이 아닌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자하문 (紫霞門 혹은 창의문 彰義門)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수도물의 압력을 높여주는 가압장이었다가 사용이 중단되어 방치된 건물로 2012년 종로구가 개조하여 문학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라고 한다. 문학관은 아담한 흰색 건물로 출입구 계단 위에 윤동주문학관이라는 글씨도 작고 색도 도드라져 .. 2015. 10. 30.
발밤발밤8 - 수원 화성과 행궁 수원 화성 걷기는 화성 행궁에서 시작했다. 화성행궁은 정조 대왕이 부친인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할 때 머물던 곳이다. 건립 당시에는 600여 칸의 조선시대 최대 행궁이었다고 하나 일제 강점기에 원형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후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복원공사를 통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문헌에 의거하여 정확히 복원되었다지만 새로 지어진 만큼 오래된 고궁에서 느낄 수 있는 해묵은 연륜의 편안함 대신 텔레비젼 세트 같은 새물내가 강한 곳이었다. 실제로 대장금를 비롯한 여러 사극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행궁 옆쪽을 걸어 팔달산 꼭대기에 올랐다. 수원성의 총 지휘부라 할 수 있는 서장대가 있었다. "이 산 둘레 100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자리에서 변화를 통제할 수 있.. 2015. 10. 26.
발밤발밤7 - BMW로 감나무집 가기 감나무집은 양수리의 수종사나 인근의 운길산 등을 등반할 때면 빼놓지 않고 가던 식당이다. 장어구이와 민물매운탕을 내놓지만 아내와 나는 장어구이만 먹어봤다. 해외 주재를 떠난 이래, 그리고 귀국해서 일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직 가보지 않았다. 근 10년만인 모양이다. 예전엔 승용차를 운전하여 갔지만 이젠 차가 없으니 'BMW'방식을 조합하기로 했다. 여기서 BMW란 BICYCLE과 METRO, 그리고 WALK의 역자이다. 가을이 깊어 하늘이 높았다. 햇볕은 투명하고 바람은 잔잔했다. 강변을 걷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다리가 뻐근할 때까지 강변을 걷다가 버스를 탔다. 전철로 바꾸어 타고 내려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배차 간격이 커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서둘 건 없었다. 감나무집은 목표가 아니라 반환점.. 2015. 10. 21.
발밤발밤6 - 군산 시간여행(끝) 군산 내항 가까이 있는 장미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가 남긴 일군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장미동의 장미는 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쌀 곳간'을 의미하는 장미(藏米)다. 유형의 유적과 함께 무형의 이름에조차 고통스런 그 시절의 잔재는 여전히 완강한가 보다. ↑ 1908년에 준공된 옛 군산세관 건물이다. 붉은 벽돌은 벨기에에서 수입을 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건축학적인 의미 외에,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에서 쌀 등을 빼앗아 가던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서 역사적 교훈을 주는 곳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 장미갤러리는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쌀을 보관했던 창고였다. 2012년에 다목적 공연장으로 개보수 되었다. ↑ 미즈커피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운영하던 무역회사 미즈상사의 건물이다. 식료품과 잡.. 2015.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