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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86

봄바람 지금은 봄꽃이 거의 절정이지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봄은 아직 꽃몽오리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날 집안에 있는 것은 죄악'이라고 아내를 부추켜 강변길로 나섰다.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아파트 화단의 백목련과 산수유. 물오른 강변의 버드나무. 잔물결에 일렁이는 햇볕에까지 봄은 어느 샌가 세상에 봄 아닌 것이 없도록 은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친구 부부들과 모임을 갖고 창경궁과 창덕궁을 걸었다. 거기서도 옛 왕궁의 근엄함을 다독이는 봄기운에 취해야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은근한 노란색의 산수유.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이웃집 점순이가 "뭣에 떠다 밀렸는지" 주인공의 어깨를 짚고 그대로 함께 픽 쓰러지며 파묻히던 알싸한 향내의 노란 동백꽃 속, 그.. 2015. 4. 3.
발밤발밤2 -구례, 늦가을(끝) 아침에 일어나 숙소인 쌍산재를 산책했다. 쌍산재는 관리동 포함 7채가 들어선 한옥집이다. 현 운영자의 고조부 되시는 분의 호(쌍산)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문에 들어서면 비탈이라 오밀조밀한 느낌이 들지만 계단길을 통해 대숲을 지나면 평지가 넉넉하게 펼쳐진다. 한옥이다 보니 아파트와 같은 완벽한 보온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겨울철의 약점을 제외하곤 묵어갈만 한 곳이었다. 쌍산재 대문 바로 옆에 "전국 최상의 물"이 나온다는 당물샘이 있다. 혹독한 가뭄이나 장마에도 늘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는 당물샘의 물은 한 달 넘게 독에 담아 두어도 물때가 끼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당물샘이 있는 상사 마을은 전국에서도 손 꼽히는 장수 마을이었다. 70객은 장년이고 환갑노인은 청년 취급을 받.. 2014. 12. 28.
발밤발밤2 -구례, 늦가을2 구례의 숙소는 쌍산재라는 한옥집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방문 창살이 선명하게 비친 하얀 창호지가 눈이 부셨다. 한옥이라 방바닥은 따뜻했으나 방안의 공기에서는 찬 기운이 느껴졌다. 잠에서 깨어서도 이불을 끌어당겨 어깨까지 덮고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일어났다. 방에 딸린 간이 부엌에서 물을 끓여 작은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봉지 커피로 입가심까지 마치고 방문을 여니 이런! 뜻밖에 비가 추적이고 있었다. 아침에 섬진강변을 걸어볼 예정이었는데 낭패스러웠다. 쌍산재 주인에게서 우산을 빌리고 구례읍까지 나가는 택시를 부탁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일정을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우리를 데리러 온 택시 기사는 "좌충우돌 구례택시이야기(http://blog.naver.com/sswlim)" 라는 .. 2014. 12. 28.
발밤발밤2 - 구례, 늦가을1 목적지와 상관없이 기차여행은 내게 여행의 원형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 버스나 전차를 타고 청량리나 동대문 쯤의 시내를 나가는 것이 특별한 나들이였다면 고속버스라는 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기차는 그보다 먼, 잠을 자고 와야 하는 장거리 여행을 의미했다. 물론 그 시절엔 순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어른들을 따라가는 정도였지만. 기차에 올라 출발를 기다릴 때의 조바심에서부터 덜컹이며 다리를 건너거나 깜깜한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의 흥분은 지금의 그 어떤 놀이기구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내가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을 제안했다. 국내여행도 오래간만이지만 기차여행은 더 오래간만이었다. 부산이나 대구를 꼽아보다가 전라남도 구례를 택했다. 지리산과 섬진강 .. 2014. 12. 27.
타히티와 보라보라 딸아이가 신혼여행으로 타히티와 보라보라를 다녀왔다. 맑고 푸른 바다. 수평선. 그 위의 흰 구름. 환한 햇살.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이는 오늘 다시 보니 더욱 화사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하지도 모릅니다 -고정희의 시,「겨울사랑」중에서 - 2014. 11. 28.
샌디에고 출장 잠시 샌디에고엘 다녀왔다. 지난번 귀국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7년을 살아 익숙한 곳이지만 앞으로는 갈 확율이 거의 없는 곳이라 아내도 동행을 했다. 일 틈틈이 샌디에고의 이웃들을 만나고 기억에 남는 곳을 골라 다녀 보았다. 신형 기종 A380의 이착륙은 부드러웠다. 엘에이 공항에 착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위 사진은 모니터에서 촬영한 것이다. 푸른 하늘, 투명한 공기와 맑은 햇빛, 끈적임 없이 피부를 뽀송뽀송하게 유지해주는 습도, 서늘한 바람 - 샌디에고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고 진부할 정도로 흔한 것들이지만 그런 것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언제나 새롭고 감동스럽다. 특히 오래간만에 한국에서의 후텁지근한 날씨를 경험한 뒤라 감동의 강도는 더욱 컸다. 활동 반경을 고려해 라호야 L.. 2014. 7. 30.
안녕 샌디에고! 샌디에고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6년 5개월 만이다. 샌디에고가 아니면 알지 못할 많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이 있었고 또 아쉬운 이별이 있었다. 귀국이 지연되어 작년 10월 이래 서너 번의 송별회를 해준 이웃도 있다. 아내는 여러 번 눈물바람을 했다. 모두 고마울 뿐이다. 언제나 삶은 녹녹치 않을 것이지만 마음이 헛헛해지는 날 마음 속으로 그 이름들을 불러볼 것이다.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날 때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따라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2014. 5. 9.
보스턴여행(끝) 보스턴에서 찰스강 CHARSE RIVER 을 건너면 캐임브리지 CAMBRIDGE 이다. 캐임브리지에는 누구나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하바드대학교와 메사츄세츠 공과대학(MIT)가 있다. MIT를 가기 위해 레드라인 지하철을 타고 KENDALL/MIT 역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학생인 듯 보이는 행인에게 물었다. 대답이 황당했다. "(주위를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가 다 MIT이다." 내가 당황스러워하자 그가 다시 물었다. "MIT의 어디를 가느냐?" "(잠시 머뭇거리다가) 돔이 있는 거대한 건물....." "아! 그레이트돔." 나중에 알고보니 MIT나 하바드는 우리처럼 거대한 정문과 확고한 울타리가 없이 수많은 건물이 마을처럼 일대에 흩어져 있는 형상이었다. 건물에 새겨진 ".. 2014. 5. 9.
보스턴여행2 보스턴에는 보스턴의 역사를 돌아보며 동시에 시내관광도 겸할 수 있는 프리덤 트레일 FREEDOM TRAIL이 있다. 4킬로미터의 트레일을 따라 통 16개의 사적지를 둘러보게 된다. 시작점은 보스턴 광장 BOSTON COMMON이다.(아래 사진 참조. 이하 동일.) 보스톤 광장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이곳에서 대중 집회가 많이 열려 'PARK'대신 'COMMO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프리덤트레일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트레일의 시작은 보스턴광장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시작된다. 안내소에서 필요한 지도나 자료를 얻고(사고) 바닥에 보이는 붉은 선을 따라가면 된다. 사적지마다 바닥에 이런 마크가 붙어있다. 그러나 특별히 미국이나 보스턴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개별 사적지에 집착.. 2014. 5. 9.